한국일보

접목

2000-07-0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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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자<시인>

뒤뜰 언덕에, 심은 기억이 없는 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온 몸에 벚꽃 못지않게 화려한 꽃을 많이 피우더니 이젠 쪼고만 열매들이 가지가 휘도록 매달려있다. 열매를 따 먹어보니 볼품과 똑같이 시큼하고 떨떠름한 것이 개복숭아임에 틀림이 없다. 옆에 서있던 남편이 “접목 시켜줘야겠군” 한다.

내가 접목된 나무를 처음 본 것은 해방 직후 어머님을 따라간 세검정 과수원에서였다. 키가 큰 감나무들 사이에 모양새없이 시들한 나무들이 있었다. 어머님은 나에게 크고 맛있는 감나무의 일부를 떼어내어 접목시킨 나무라고 일러주셨다. 나무의 접목된 곳에는 주위가 흉터같이 도출되어있고 곳곳에 나무 액이 송진같이 더덕더덕 붙어있었다. 어머님은 해마다 세검정에서 빨간 땡감 몇 접을 사오시어 뒷마루에 있는 나보다 키가 큰 오지 항아리에 감 한켜와 볏짚 한 켜씩을 차곡차곡 쌓아놓으시곤 했다.

엄동설한 추운 겨울에 눈이 현관 문턱 위까지 쌓여있어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집안에서 놀고있으면 어머님은 항아리에서 홍시가 된 감과 벽장 속에서 굳어진 찰떡을 꺼내 화롯불에 구워주시곤 했다. 특히 그런 날 나는 할머님 무릎에 앉아 한없이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다고요?” 끈질긴 호기심은 할머님이 화장실에 가실 때도 따라가 문밖에서 계속 물어보곤 했다. 벌써 50여년이 지난 그리운 추억이다.


접목, 한 나무의 일부를 잘라내고 다른 나무의 일부를 부쳐서 보다나은 나무로 거듭 나게 하는 것이다. 한 나무는 위쪽을 버렸고 다른 나무는 뿌리를 버렸다. 한 나무는 자신의 미래를 내 놓았고 다른 나무는 뿌리를 지난 과거로 돌렸다. 두 나무의 살과 힘줄을 부쳐서 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 접목을 한다. 그러나 접목을 시킨다고 더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다. 잘못하면 두 나무를 잃게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어진 부위에 버팀목을 해주고 동아줄로 묶어 서로 동화되어서 한 개의 나무로 추스를 때까지 토양과 비료와 날씨를 고려해서 알맞게 돌봐 주어야 한다. 이질의 두 나무가 겪는 오랜 치유의 기간이 지난 후에는 접목된 나무에서 우리는 좋은 결실을 보게된다.

우리들의 접목을, 이민을 생각해본다. 우리도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뿌리를 두고 미국으로 접목해왔다. 두 나라의 문화를 여과하고 관습을 소화하고 가치관을 정리해서 두 곳의 양분을 골고루 흡수하도록해야겠다. 두 곳의 좋은 점을 선택하면서 두 곳의 역사를 이해하고 현재의 뿌리를 더 튼튼히 해야겠다.
두 문화가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데 많은 부작용이 따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접목에는 목적이 따르는데 더 좋은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서 일세들은 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에 따르는 부작용을 감내하면서 이세들을 위해서 희생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문화적 사회적 생활반경의 축소로 인해 소외감과 말못할 심리적 불안을 느끼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접목을 하므로써 얻게되는 삶의 다양성을 생각해본다. 접목된 나무는 한 뿌리로 두 개의 생을 산다. 지나간 삶의 추억은 나이테에 무늬져 놓았다. 서로가 서로의 것을 공유했을 때, 양쪽이 서로에게 소속되었을 때 접목은 성공한다. ‘비 소속은 비 존재’라는 카프카의 문장을 되 새겨본다. 또한 접목은 같은 종류의 나무끼리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한 단계의 접목을 이루었으면 다음 단계의 접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자신에게 가능한 분야를 더욱 연구 개발해서 사회에 기여하는 일도 다른 차원의 접목이라 생각한다. 그런 분들의 경험을 신문에서 종종 볼수 있다.

7월4일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이다. 오늘날 미국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세계 제일의 초강대국이다. 1620년부터 미국의 옥토에 메이플라워호로 실어온 프로테스탄트 이민나무의 접목이 없었다면, 그 개척 정신과 의지가 없었다면 가능한 일이겠는가? 실용주의의 비료를 주지 않았다면 오늘의 미국의 위치가 있을 것인가? 접목으로 좋은 열매를 맺을 때 그 열매는 계속 커져서 이민의 의미를 더욱 의의있게 맺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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