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재정위기 직접 챙기는 아시아

2000-06-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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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 of America

아시아권 경제가 활기있게 회복되고 있지만 지난 97-98년 재정위기로 인한 깊은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지는 못한 상태다. 더 이상 미국이나 국제기구의 보호를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시아국가 지도자들은 세계통화시장의 격변에 대한 지역차원의 방위 시스템 구축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탁상에 오른 방안중에는 아시안통화기금(AMF) 설립, 지역 교역협정 체결, 대달러화 의존도를 낮추는 것등이 포함돼 있다.

최근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 모인 말레이시아,브루네이,싱가폴등의 정부고위 관계자들과 학자들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아시아 통화의 붕괴를 구원해줄 능력이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회의에서는 미국이 세계재정구조의 재편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비난도 나왔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회의의 실패가 세계경제의 흐름이 제방향으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일부 아시아국가들은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으로서 독선에 빠져있고 아시아적 가치를 존중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다른 아시안 국가들은 미국이 지난97년 태국 통화위기에 조기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이지역에 IMF사태를 몰고왔다고 이율배반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양진영 모두 미국을 불확실한 우방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에서만은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아시안국가들이 자신들의 재정문제를 모두 외부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자기네 경제의 결점을 잘알고 있다. 공공분야의 부패와 사기업분야의 불공정 사업관행등 시정해야할 문제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아시안국가들은 지역내 8000억달러의 외환비축분을 기반으로해 미국을 제외한 지역경제기구를 설립하는 일련의 방안을 내놓고 있다. 종전 일본이 내놓았다가 미국에 의해 거부당한 AMF설립안도 그중 하나로 이를 통해 세계재정문제 토론에 있어서 아시아권의 목소리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AMF가 IMF와 연계될 것인지 아닌지의 개념은 아직 불분명하지만 미재무부는 AMF가 설립되면 아시아 지역내 미국의 입김이 약화되고 일본의 것이 강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들 방안중에는 일본의 엔화를 중심으로한 통화권 구축 혹은 달러나 유로화에 상응하는 아시안화폐의 창설등이 포함돼 있다.

지난달 태국의 치앙마이에서 열린 아시안국가 재무장관및 중앙은행장 회의에서는 지역내 단기 크레딧라인의 구축이 논의되기도 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국과 한국,중국,일본등 13개국의 이지역 국가들은 미국이 포함돼 있는 기존의 ASEAN지역포럼을 소위 "10 플러스 3"협약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국가들의 협력에는 한가지 장애가 있다. 바로 국가들의 크기와 경제력,개발이념등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또한 과거 서로 혈전을 치렀던 적대국들도 상당수 있다. 게다가 기존의 IMF 및 WTO와 마찰을 빚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미국은 과연 아시아권의 지역주의를 우려해야만 하는가. 아시아국가들은 미국이 서반구에서는 유럽국가들의 지역주의에 동참 내지 장려하는 입장이면서 아시아권에 대해서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아시아지역 재정기구가 시장개방,분쟁의 평화적해결등 기본적 이해관계를 보장할지 그리고 부패와 권위주의적 정치등 문제점을 뛰어 넘을수 있을지 여부를 우려하고 있다. 아무튼 미국이 적극적으로 막지 않는한 올여름 아시아 국가들은 지역내 재정위기에 대한 ‘메이드인 아시아 해결책’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리차드 파인버그 (LA타임스 기고, UC샌디에고 아태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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