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전 기념행사 유감

2000-06-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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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 한우성<경제부 차장>

한미문화교류재단과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미서부지회는 남북정상회담의 연장선상에서 각종 6·25기념행사가 대폭 축소되는 가운데서도 참전용사와 가족 등을 대거 초대, 총영사관저에서 피와 고통으로 한국을 지켰던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소중한 자리를 마련했다. 바쁜 이민생활에서 민이 주도해 이같은 행사를 치렀다는 사실 자체가 자랑스럽고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이번 행사는 너무도 문제가 많았다. 우선 주최측부터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행사를 준비했느냐 하는 명쾌한 개념을 갖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기념행사는 전쟁의 의미를 되돌아 봄으로써 비극의 재발을 막고 전장에서 고귀한 목숨을 바친 전몰장병을 비롯한 참전용사와 그들의 가족, 나아가서는 전쟁에 휘말려 아무런 잘못도 없이 죽고 다치고 짓밟혔던 국민을 위해 여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행사에서는 행사 주최측 인사들이 연단에서 ‘행사 준비에 수고가 많았기 때문에’ 메달과 감사패를 받고 한국에서 피를 흘렸던 연단 아래 참전용사들은 박수를 치는 웃지못할 해프닝이 벌여졌다. 수상자중에는 김명배 총영사, 피터 그래빗 미육군 40사단장까지 들러리로 세워졌다. 빛바랜 군복을 입고 관중석에 앉아 있던 미군 참전용사가 고개를 좌우로 젓다가 눈을 마주치자 애써 웃음을 짓는 모습을 그들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해프닝은 또 있었다. 참전용사를 위해 한국정부가 기념메달을 준비했다고 발표하던 LA총영사관 관계자는 "정부 예산이 모자라 메달을 한꺼번에 다 만들지 못했으므로 앞으로 3년간 차례로 전달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부가 한국전쟁 기념사업 예산이 남아 고심한다는 얘기는 어디 가고 예산문제로 메달을 못찍어 3년내로 전하겠다니 이건 또 무슨 얘기인가. 사실 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공식석상에서 외교관의 입을 통해 나올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이쯤 되니 음식이나 기념품이 모자라는 것은 애교일 수밖에 없다. 식순이 한창이던 5시가 넘자 이미 음식은 바닥나기 시작했고 연단 위에서 서로 메달을 주고 받기 바쁜 행사 책임자들은 몰랐겠지만 이 때쯤 참전용사들은 "너무 배가 고프다. 샌드위치라도 먹자"며 그나마 열 개쯤 남아 있던 샌드위치라도 달라며 덩그러니 밥만 담겨 있는 접시를 내밀었다. 음식은 6시30분쯤 다시 도착했지만 이때쯤 이미 많은 참석자들은 행사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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