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필 잭슨감독의 성공 비결

2000-06-2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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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칼럼

▶ 박덕만

지난87년 필 잭슨이 어시스턴트 코치로 부임했을 때 시카고 불스는 마이클 조던이라는 수퍼스타 1명에 11명의 난장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1인 군단’ 조던이 환상의 ‘에어 쇼’ 묘기를 펼치며 50포인트대의 득점을 올리곤 했지만 정상에는 단 한번도 올라보지 못한 B급 팀에 불과했다. 80년대의 NBA는 매직 잔슨의 LA레이커스, 래리 버드의 보스턴 셀틱스, 그리고 아이재야 타머스가 이끄는 디트로이트 피스턴스의 무대였다. 그해 조던은 게임당 평균 35.0포인트의 기록으로 2년 연속 NBA 득점왕에 올랐지만 불스의 시즌성적은 40승42패에 그쳤다.

당시 불스 감독이었던 덕 콜린스는 선수들에게 "마이클에게 볼을 주고 꺼져버려!"라고 외쳤다. 농구란 결코 개인경기가 아니라 팀경기라는 사실을 잘 알고있던 잭슨이지만 어시스턴트 코치 입장에서 어쩔 수 없었다. 88년 12월7일 잭슨이 감독으로서의 능력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경기초반 불스가 14포인트나 뒤지고 있던 상태에서 다혈질 콜린스감독이 퇴장당했다.

대신 지휘봉을 잡은 잭슨은 선수들에게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고 "나가서 부담없이 경기를 하라"고 말했는데 놀랍게도 불스가 역전승을 거뒀다. 그날 경기에 뛰었던 호레이스 그랜트는 "마치 갇혀있던 우리에서 풀려난 느낌이었다. 마음이 날아갈 듯 가벼웠기 때문에 큰 점수차 리드를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잭슨은 결코 선수들에게 고함을 치지 않는다. 무리한 요구를 하는 법도 없다. 선수들에게 심리적 부담도 주지 않는다. 잭슨은 "감독의 역할이란 선수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줌으로써 개개인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 해주는데 있다"고 믿고 있다. 다음시즌 불스는 콜린스를 해고하고 잭슨을 감독으로 승진시켰다.

정식으로 사령탑을 맡은 잭슨은 그동안 소홀히 취급됐던 수비를 강조했다. 또 조던에게만 집중됐던 공격의 기회를 다른 선수들에게도 고루 분산시켰다. 조던에게 원할 경우 언제나 슛을 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주는 일을 잊지는 않았다. 덕분에 어깨가 가벼워진 조던은 ‘1인군단’에서 ‘농구황제’로 플레이의 차원을 한단계 높힐 수 있었다. 그동안 주목을 받지 못했던 포워드 스카티 피펜도 제 기량을 발휘하며 스타 플레이어의 반열에 올랐다.

90-91시즌 불스는 NBA파이널에서 레이커스를 5게임만에 물리치고 창단 25년만에 처음으로 NBA 정상에 올랐다. 그후 불스는 3년연속 NBA 패권을 차지한뒤 마이클 조던의 일시적 은퇴로 공백을 가졌다가 다시 95-96시즌부터 97-98시즌까지 3년 연속 챔피언에 올랐다.

97-98시즌 전무후무한 2차례 3연속 NBA 챔피언 등극기록을 마지막으로 조던은 은퇴했고 잭슨도 불스를 떠났다. "마이클 조던이 있었기에 불스의 우승이 가능했던 것 아니냐"며 잭슨감독의 공적에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잭슨은 다시 LA레이커스 감독 부임 첫해에 NBA 챔피언쉽을 쟁취함으로써 보기좋게 답했다. 잭슨 취임전 레이커스는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라는 수퍼스타를 중심으로 NBA 최강의 전력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번번히 플레이오프 초반에 탈락,팬들을 실망시켰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기량이 뛰어난 수퍼스타 선수들을 한데 묶어 팀플레이를 연출시킬 조련사가 없었던 탓이다.

잭슨은 개성이 달라 따로 놀던 오닐과 브라이언트를 찰떡궁합 콤비로 만들어냈다. 천방지축 브라이언트를 수비와 어시스트가 뛰어난 팀플레이어로 변신시킨 것도 잭슨감독의 공이다. 불스감독 시절 악동 데니스 로드먼도 길들였던 그에게 브라이언트 쯤이야 문제가 될리 없었다.

NBA 선수들이란 농구실력 하나로 스타덤에 올랐지만 이제 경우 20대 초반~중반의 어린 나이들이다. 대부분 대학 2~3학년을 중퇴하고 NBA무대에 뛰어드는데 갑자기 쏟아진 부와 명예를 감당 못하고 유혹의 늪에 빠져 그늘로 사라진 선수들도 하나둘이 아니다. 평소 스트레스를 참선으로 풀고 있어 ‘젠 매스터’로 불리우는 잭슨은 선수들이 옆길로 빠지지 않도록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정신적으로 성숙해야 신체적 기량도 향상되는 법이라며 독서를 권하고 있는 것도 그런 취지에서다.

잭슨의 지휘방법은 비단 농구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생활에서도 통할 수 있다. 특히 많은 부하직원을 통솔하는 보스나 수퍼바이저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믿고 맡김으로써 개개인의 역량을 십분 발휘하게 하는’ 잭슨의 지휘 스타일을 본 받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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