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에서 본 의료대란

2000-06-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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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생각

▶ 한승수, 의사

한국에서는 지금 의사들의 파업으로 의료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언론에서는 의사들이 환자 보기를 거부해 환자들이 죽어 가고 있다고 연일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과연 의사만의 책임일까?
물론 일부 병원에서 응급실을 닫아 환자들이 죽게 된 것은 의사들의 잘못이다. 그러나 의사라면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상당한 교육을 받은 양식있는 사람들이다. 이번 파업은 의사 99%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이런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하는 것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면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지 한번 돌아 봐야 한다.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정부가 의료업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약 분업을 강행한데 있다. 의약분업의 취지는 나무랄데가 없다. 사실 그 동안 한국민들은 아무나 약국에 찾아가 마음대로 약을 지어 먹을수 있어 항생제 남용등 부작용이 많았다. 결핵 같은 것은 너도 나도 결핵약을 먹는 바람에 웬만큼 약을 써서는 치료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번 정부 방침은 의사와 약사의 업무를 분담시켜 전문성을 확립, 의료분야를 선진국화 한다는게 취지이다.

그러나 정부의 의약분업안은 구체적인 재정적 뒷받침 없이 명분에 치우친 인상이 짙다. 그 동안 의사들은 정부가 정한 비현실적인 의료수가로 인한 재정 손실을 약을 지어 파는 것으로 보충해왔다. 의료수가는 현실화하지 않으면서 의사의 주수입원을 빼앗아 간다면 문을 닫는 병원이 속출할 것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의료 선진화는 좋은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현실이 따라주지 않으면 실효를 거둘수 없다. 개혁이라는 이름만으로 한쪽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정부 입장에서는 의료수가를 올리자면 국민 보험료를 올리든가 세금을 더 거둬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데 둘 다 국민들의 반발이 두려워 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정부가 의료분야에 너무 지나치게 개입을 많이 한다는데 있다. 미국에서는 한국과 같은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은 없다. 메디케어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의사와 환자 자율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정부가 대부분의 의료수가를 지나치게 낮은 선으로 묶어 놨기 때문에 의사들은 각종 편법으로 부수입을 올리는 것이 관행화 돼 왔다. 이번 사태도 그동안 정부가 의사들의 이야기는 들어 보지도 않고 의료 행정을 좌우해 온데 따른 누적된 불만이 터진 것이다.

정부에서는 이번 문제를 파업 주동자를 체포하는 것으로 해결할 생각인 듯 하다. 그렇게 되면 이제는 감정 문제로 번져 의약분업은 뒷전이고 동료 의사를 석방하라는 파업이 계속될 것이다.

민주 사회에서 고소득자란 이유로 한 집단의 희생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정부가 의사들을 잡아 가두겠다고 협박하기 보다는 의사-환자가 자율적으로 치료를 주고 받을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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