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냉전배경하에서 한국전의 영향

2000-06-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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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과 월남전은 냉전시기 미국이 치른 두 개의 주요전쟁이다. 워싱턴은 이 두 전쟁을 소련 세력의 세계적 팽창이라는 측면에서 보았다. 이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두 전쟁은 다르다. 이 두 전쟁을 동등시하는 경향 때문에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의 비전에 혼선이 왔다.

한국전쟁은 한마디로 북한이 남침을 함으로써 시작된 전쟁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월남전은 발단이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려는 투쟁에서 시작됐다. 월남 지도자 호지명은 공산주의자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열렬한 민족주의자다. 호지명은 중국의 장깃말도 아니고 소련의 괴뢰도 아니었다. 또 월남인들은 역사적 이유 때문에 중국을 두려워하고 혐오한다.

트루먼 대통령과 후계자들은 그 차이점에 무지했다. 중국이 적화되고 한국전이 발생하자 월남사태를 공산당의 세계적화의 일환으로 워싱턴은 바라보았다. 또 당시 워싱턴은 ‘공산주의에 너무 미온적’이라는 비난을 받고 이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 프랑스는 미국의 월남 개입을 부추겼다.

1954년 프랑스가 월남에서 패배한 후 소련과 중국은 서방과의 관계개선을 염원하고 있었다. 그 결과 소련과 중국은 월남 분단을 가져오는 협상에 도움을 줌으로써 월남을 배반했다. 또 다른 한국전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월남 공산당은 이후 모스크바와 베이징에 대해 깊은 불신감을 품게 됐다.

한국전의 경험은 미국의 월남전 수행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워싱턴은 공산 월맹이 한국전의 경우와 같이 전면전을 감행할 것으로 보고 남쪽의 월남정부를 군사적으로 지원했다. 월맹은 그러나 게릴라 전술을 도입했다. 린든 존슨 대통령은 60년대 월남전을 확대시키면서 중국의 개입사태를 우려했다. 한국전에서의 경험이다. 이 역시 오판이었다. 모택동은 문화혁명준비에 바빴을 뿐이다. (스탠리 카노프·퓰리처상 수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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