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전의 이론적 근거

2000-06-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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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은 20세기에 발생한 다른 주요 전쟁들과 마찬가지로 환경적 요인에 따른 불가피한 전쟁이란 식으로만 설명할 수가 없다. 분단과 함께 상호 적대적인 정치적 양극 체제가 남과 북에 들어섬에 따라 폭발의 개연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한국전 이후 남북한 관계 및 다른 분단 국가들의 상황을 살펴보면 분단이 반드시 전면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환경보다 상황 인식과 예측력이 전쟁을 불러오는데 더 결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 러시아측의 자료가 공개됨으로 해서 한국전이 어떻게 결정됐는지 그 윤곽 파악이 더 용이해졌다. 또 이같은 무력 남침의 결정의 배경 파악도 가능해졌다. 이번 연구의 초점은 한국전 결정의 당사자들인 스탈린, 김일성, 모택동 등 당시 공산국 지도자들이 지닌 상황 인식에 맞추어져 있다.

첫째 이들 공산국 지도자들은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들은 내재적으로 공산블록에게 안보위협이 된다고 보았다. 스탈린과 모택동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일본이 재무장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재무장된 일본은 소련의 극동지역과 중국을 위협, 한반도가 위협행사의 발판이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이들은 보았다. 따라서 한반도 남부에 친미, 친일적인 정부가 들어서면 이는 소련과 중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남한정부 전복은 그러므로 중국과 소련으로서는 결행할지 말지의 문제가 아니고 단지 언제 할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둘째 김일성은 조속한 승리를 과신하고 있었던 반면 스탈린은 양측의 상대적 힘을 계산하는데 있어 보다 현실적이었다. 그러나 김일성이나 스탈린은 모두가 상대 의지 인식에서 큰 오류를 보였다. 당시 남한정부 지도자들이 주장하던 북침통일을 바로 워싱턴의 의사로 본 게 우선의 오류였다. 1949년 스탈린은 미국 지원하의 한국군의 북침이 임박했다고 판단, 군사적 선택을 심각히 고려하고 있었다.


셋째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모두가 미국의 개입 의사 신호를 잘못 읽었다. 그들은 중국의 국공내전에서 미국이 철수하자 이를 약점으로 파악, 중국에서 공산주의의 승리를 허용한 이상 미국은 한국에도 개입하지 않을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전면적 남침이 감행된 후 유엔군참전이 결정되자 이들은 깜짝 놀랐다.

넷째 이 3명의 공산국 지도자들은 당초부터 북한은 동맹국으로부터의 병참 및 병력 지원을 필요로 할 것으로 보았다. 중국에서 국공내전이 끝났으므로 중국의 인민해방군의 한국전 투입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스탈린으로 하여금 북한의 남침 결정을 내리는데 주요 역할을 했다. 스탈린은 김일성의 남침 승인을 요청하자 먼저 모택동으로부터 파병 약속을 받아낼 것을 주장했다. 스탈린은 소련은 무기공급, 병참지원, 고문단 파견 등의 지원은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소련군의 파병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못박았다. 한국전이 확대될 경우 세계대전이 되고 또 소련이 휘말려 미국과 전쟁을 벌이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서였다.
(캐더린 웨더스비·우드로우 윌슨 인터내셔널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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