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느 증권 사장 잠적이 가져온 후유증

2000-06-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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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돈이다. 고객의 돈을 맡아 관리해 주겠다던 LA의 M 증권회사 사장이 수백만달러의 손해를 입힌 후 어느 날 갑자기 잠적해 버렸다. 사건의 전모는 증권 회사 사장이 나타나야 밝혀지겠지만 지금까지 자체 조사 결과는 사장 L씨가 고객의 허락도 받지 않고 임의로 주식 투자를 했다가 손해가 계속 불어나자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취를 감춘 것으로 보인다. 회사측은 배상책을 강구중이라고 밝혔으나 피해액이 워낙 크고 당사자가 없는 상태여서 제대로 보상이 이뤄질지는 의문이다.

작년 7월 대대적인 선전과 함께 한인타운내 문을 연 M 증권은 한국의 동원증권과 업무 제휴를 맺고 한국증권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다. 그동안 130여명의 한인이 이 회사에 최고 100억원에 달하는 돈을 맡겼으며 이중 절반 가량을 L씨가 관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1000대를 오르 내리던 한국의 종합주가지수가 올 초 600선으로 내려 가고 하이텍 기업이 몰려 있는 코스닥지수는 290에서 100대로 급전직하하자 이씨 관리구좌들은 엄청난 손해를 봤다. 투자가들이 뒤늦게 손해를 본 사실을 알고 이씨에게 항의하자 이씨는 ‘배상해 주겠다’며 선일자 개인수표를 끊어준후 만기일이 다가오자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번 M 증권 파동의 심각성은 투자한 주식이 떨어졌다는 것보다 브로커가 고객의 허락도 받지 않고 임의로 주식을 샀다 팔았다 했다는 점이다. 소중한 남의 돈을 어떻게 주인도 모르게 떡주무르듯 할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브로커의 주 수입원은 커미션이다. 브로커의 입장에서는 주식을 자주 사고 팔수록 더 많은 돈을 번다. 증권업계에서는 브로커가 별다른 이유 없이 주식을 단기매매해 커미션을 챙기는 행위를 ‘휘젓기’(churning)이라고 부른다. 이같은 현상은 한인증권 업계에 국한된 것은 아니고 미국 증권회사도 마찬가지다. 돈주인이 조금만 한눈 팔면 장난칠 소지는 상존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파동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한인 증권 회사내 자체 감시기능이 대폭 강화돼야 하지만 고객들도 투자자세를 고쳐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주식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브로커 한테 돈만 갖다 맡기면 요행히 돈을 벌수 있으리라 믿는다면 이는 큰 착각이다. 주식에 손대려는 사람은 뮤추얼펀드와 주식이 어떻게 다르고 마진투자를 하면 어떻게 되는가는 최소한 공부를 하고 시작해야 한다. ‘경험있는 사람과 돈있는 사람이 동업을 하면 경험있는 사람은 돈을 얻고 돈있는 사람은 경험을 얻는다’는 속담이 있다. 자기 이름으로 자기 구좌에 들어 있는 돈도 관리를 소홀히 하면 남의 돈이나 마찬가지임을 이번 증권 파동은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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