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통일의 길목에선 말을 아끼자

2000-06-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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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생각

▶ 정균희

남북한의 정상이 함께 만나서 2박3일의 회담일정을 순조로이 마칠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사건이었다. 이산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국내에서나 해외에서나 피와 문화와 언어를 공유한 우리 대한사람이라면 누구나 감격하며 코가 찡하는 경험을 했으리라. 이런 대단한 사건을 맞이하고도 감격하지 않는 이들도 더러는 있는 모양이다. 또 이런 대단한 사건을 접하고도 기뻐하기는커녕 협상의 조건과 통일의 조건을 붙여가며 왈가왈부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통일로의 길은 이제 걸음마를 시작했다. 통일의 조건이 늘어날수록 남과 북의 만남과 대화는 경직되기 쉽다. “미군철수, 통일정책의 투명성, 상호주의, 대북지원의 입법화, 보안법 철폐, 6.25의 책임인정” 등 이것저것의 조건과 따져야 할 것들이 많아질수록 통일로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물론 나름대로의 의미도 있고 통일의 과정에서 하나씩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기도 하지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갈까’ 두려워진다. 더러는 충심으로 또 더러는 놀부심보로 따지겠지만, 이제 겨우 통일로 향한 걸음마의 시작이니 말을 아끼는 지혜가 더 절실하다.

돌이켜 보면, 선조들의 말싸움과 당파싸움으로 시달리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조선왕조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데서부터 민족 불행이 시작되었다. 나라 잃고 목소리 잃고보니 강대국들의 2차 세계대전 마무리 과정에서 엉뚱하게 당한 것이 바로 민족분단의 역사였다. 남의 나라를 반동강이 내는데 무슨 ‘투명성’이 있었겠으며, ‘상호주의’가 있었으며, 법 절차가 있었겠는가. 약육강식 자연법칙에 노출된 우리 민족의 처절한 아픔의 역사가 있었을 뿐이었다.


민족분단의 역사는 우리들이 약했고 분열했기 때문에 아무런 조건도 없이 메어진 멍에 였다. 이제 50년의 분단의 역사를 뛰어넘는 통일도 우리가 강해지고 단합할 때 이유와 조건을 넘어서서 이루어 질 수 있다. 남과 북은 한 민족이요 피는 물보다 진하기 때문이다.

성서에서 주색잡기에 가산을 탕진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올 때 탕자에게는 조건이 없었다. 죽었다고 생각한 아들이 살아 돌아올 때 아버지도 이 탕자와 귀환을 받아들이는데 조건이 없었다. 기뻐서 잔치를 벌일 뿐이었다. 이때 생긴 변수는 큰아들이 본 모양새 옅다. 가업에 충실해온 장자를 위해서는 닭 한마리 잡아 주기에도 인색했던 아버지가 재산을 축내고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돌아온 패륜아를 위해서 살찐 송아지를 잡는다는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나고, 가정교육상에도 좋지않고, 한마디로 아버지 말씀 잘듣고 일만 열심히 한 “나는 뭐냐?”는 질문을 제기 한 것이다.

한 몇 개월간 종살이를 하는 벌을 주든지 하여서 가산탕진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할만도 했다. 이런 장자의 고민에 아버지는 설득한다. “이 모든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냐,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오니 넌들 왜 기뻐하지 않을쏘냐”하며 보다 높은 차원의 척도로 이 사건을 볼 수 있는 눈을 가르친다.

긴 분단의 길에서 돌아와 이제 거울 앞에선 남과 북. 원수처럼 싸우고 죽이고 하던 과거를 벗어나 이제 만남과 화해의 미래로 들어가려는 형제들에게 무슨 조건이 필요하랴. 탕자의 아버지 같은 심정으로 기다리며, 말을 아끼며, 보다 높은 차원의 기쁨으로 통일을 준비하자. 감상주의는 금물이다. 그래도 통일의 조건은 무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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