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람을 키우는 녹색 엄지들.

2000-06-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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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광장.

▶ 앤 박

지난 이른 봄 한 친구로부터 코스모스 씨를 선물로 받았다. 어머님께서는 그 씨를 뒤뜰에 심으시고 매일 물과 거름을 주면서 열심히 돌보셨지만 꽃이 피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에 활짝 핀 코스모스 꽃의 분홍빛 얼굴들이 앞뜰에 나란히 있는 것을 보고 정말 즐거웠다. 어머님께서는 코스모스가 꽃이 피고 더 잘 클 수 있도록 햇볕이 잘 드는 앞마당으로 옮기시고 사랑과 정성으로 돌보아 주신 결과로 꽃이 피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어머님처럼 식물과 화초를 잘 키우는 사람들을 미국에선 녹색엄지(Green Thumb)를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난 앞뜰에 활짝 핀 코스모스를 생각하며 문뜩 젊음의 집(그린 패스처 아카데미) 선생님들과 자원 봉사자들이 생각났다.

‘젊음의 집’의 2000년 고등학교 졸업생들의 밝고 희망찬 모습 뒤에는 우리 젊은 청소년들이 다시 한번 새 출발할 수 있도록 수고와 정성을 아끼지 않은 봉사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연히 자원 봉사자의 일원으로 졸업생들의 졸업 인터뷰에 참가했던 나는 많은 좌절과 실패, 그리고 실망을 이겨내고 마침내 늦게나마 고등학교 졸업장을 품에 안게된 ‘젊음의 집’ 졸업생들의 용기와 노력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그중 잊혀지지 않는 한 여학생이 있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는 비애와 혼란에 가득차 있었고, 흩어진 노랑머리에 코와 입술에 낀 고리들로 인해 고운 얼굴은 과격한 빛을 뛰고 있었다.

“왜 어른들은 나를 이해 못하죠?” “난 무정부주의자 예요” 그녀는 ‘펑크’ 족의 무질서한 생활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걸식하는 노숙자 생활을 자유인양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동경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겨우 18살이었지만 규칙적인 학교생활과 따뜻한 가정의 침대와 식탁을 등진지 벌써 여러 해였다. ‘젊음의 집’ 선생님들이 없었다면 그녀는 우리들의 품을 벌써 떠났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젊음의 집’은 다시 한번 마지막과 시작의 끝을 묶어주는 안전지대 였던 것이다.
마침내 고등학교 졸업장을 앞에 두고 그녀는 ‘젊음의 집’ 선생님들께 진정한 감사를 보내고 있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고통과 번민을 귀담아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열린 마음이었다.

지난 15일은 ‘젊음의 집’ 졸업생들이 다시 한번 새 출발하는 졸업식 날이었다. 어린 나이의 오해와 실수로 인생의 낙오자로 남지 않도록 사랑과 인내로 이 젊은이들의 앞날을 다시 열어주는 ‘젊음의 집’ 여러분들은 사람을 잘 키우는 ‘녹색 엄지’를 가진 분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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