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색내기 장학금

2000-06-2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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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모임인줄 알았으면 안갔어요. 구걸하러 간 것도 아니고… 영 기분이 씁쓸하더군요”

최근 LA의 한 한인단체 장학금 수여식에 다녀온 학부모가 불쾌한 기분을 털어놓았다.

“장학금 수여식이라면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서 노력을 치하하고 격려해주는 행사가 아닙니까? 학생들이 그날의 주인공이 되어야지요. 그런데 주최측은 장학생들이 앉을 테이블도 마련을 해놓지 않았어요”


굳이 장학금 수여식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행사라면 사전에 좌석 배치를 끝내고, 참석자들이 도착하는 대로 테이블 번호를 줘서 각자 자리를 찾아가게 하는 것이 보통. 그런데 이 단체의 그날 행사진행은 도무지 두서가 없었던 것 같다. 참석자가 예상보다 많아 좌석이 부족하자 한쪽 구석에 테이블을 급히 만들어 장학생과 그 가족들을 거기에 앉게 했다.

“턱시도에 드레스를 차려입은 그 단체 회원들은 행사장 가운데를 차지하고 우리 장학생 가족들은 완전히 ‘찬밥’이었어요”
장학생 가족들을 특히 언짢게 했던 때는 식사시간. 다른 테이블에는 코스별로 식사가 날라지는 데 그 테이블만은 예외였다. 남들 식사하는 것 구경만 하다가 웨이터들에게 항의를 하니 식사시간이 끝날 무렵 달랑 도시락 한 개씩이 배달되었다.

“그냥 일어설 수도 없어 모멸감을 누르며 끝까지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더군요. 집에 와서 장학금 봉투를 열어보니 액수가 달라요. 학생당 1,000달러씩 지급된다고 신문에도 몇번씩 소개된 걸 봤는 데 막상 받아보니 500달러였어요. 주최측에 전화를 해봐야 할 지, 치사해서 그만 둬야 할지 생각 중입니다”

1930년대 초 존이라는 가난한 청년은 대학공부가 꿈이었다. 그러나 독일 이민1세인 부모는 아들의 학업을 도울 형편이 못되었다. 콜롬비아대학에서 250달러의 장학금을 받게 되었지만 그 액수만으로는 부족했다. 학교측에 사정을 해서 장학금을 두배로 늘려받은 후 어렵게 그는 대학을 마쳤다. 그때 장학금 500달러는 그에게 아메리칸 드림으로 가는 열쇠였다.

그는 그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500달러의 은혜를 그는 1억달러가 넘는 장학금으로 갚았다. 방송매체 재벌 메트로미디어의 존 클루게회장이 바로 그 청년이었다.

미국의 대학들이 오늘과 같은 발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름 있고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부금 덕분이었다. 모든 자선사업이 다 뜻이 있지만 장학사업은 젊은이들의 미래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특별하게 의미가 깊다. 한인사회가 커지면서 이런 저런 장학재단이 생기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장학금을 주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장학금을 주는 데도 격식이 있어야 한다. 받는 학생들이 영광스럽게 느낄 수 없으면 곤란하다. 단체의 대외 홍보용 생색내기 행사, 구색 맞추기 프로그램이라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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