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백악관 훈장수여식

2000-06-2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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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 한우성 차장<경제부>

오늘 백악관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그럴듯한 정치쇼가 한 판 벌어진다. 2차대전에 참전해 혁혁한 무공을 세웠으나 인종차별로 인해 훈격 2위인 특별무공훈장를 받았던 아시아계 미군 참전용사들 21명의 훈장을 훈격 1위인 명예훈장으로 승격하는 훈장수여식이다.

미정부는 이번에 훈장이 승급되는 참전용사들을 한데 묶어 ‘아시안 아메리칸 참전용사’라고 부르며 ‘과거의 차별에 대한 시정’이라고 홍보하고 있는데 워싱턴 소식통들은 이번 조치가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아시안 표를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오늘 훈장수여식이 과거의 차별에 대한 진정한 시정이든 정치쇼이든 아시안 커뮤니티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수훈자 명단을 보면 일본계가 19명, 중국계가 1명, 필리핀계가 1명이고 한인은 한 명도 없다. 문제는 수훈자격이 있는 한인이 없다면 모르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원래 이 명단에는 김영옥 예비역 미육군대령이 올라 있었다. 그는 바로 이번에 일본계 수훈자를 대거 배출한 미육군 제100보병대대의 소대장→정보장교→작전장교였는데 그의 활약상은 일본계들이 스스로 쓰거나 제작한 ‘예기치 않은 해방군’(Unlikely Liberators: 아주 정확하고 아름답게 쓰여져 일본에서 문학상도 받고 미국에서 대학교재로도 채택됨)이나 ‘철조망 너머로’(Beyond Barbed Wire: 미국정부의 일본 커뮤니티 탄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등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들로 다뤄지고 있다.

그런 그가 마지막 순간에 수훈자명단에서 제외됐는데 일본 커뮤니티 일각의 반대 로비 때문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철조망 너머로’의 개정판에서도 그의 활약상을 담았던 부분은 삭제됐다. 그와 함께 싸웠던 일본계나 이들의 활약상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그가 수훈자 명단에서 제외된 사실을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가 제외됨으로써 클린턴 행정부가 ‘과거의 차별에 대한 시정’으로 포장하고 있는 일본계의 잔치에서 한인들은 ‘들러리’도 서지 못하게 됐다. 그가 제외된 이유가 일본계 일각의 반대 로비 때문인 같다는 얘기도 한국에 애정을 가진 일본계가 흘려준 것이다. 요란한 팡파레속에 치러질 오늘 훈장수여식과 함께 한인들이 눈여겨 봐둬야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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