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4·29 재발의 악몽

2000-06-2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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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폭동이 난줄 알았습니다”
“이겨서 좋으면 조용히 축하할 일이지 왜 불들을 지르고 xx인지 모르겠어요”

6·19 소요 현장을 지켜 본 한인들 이야기다. 스테이플스 센터 인근 올림픽과 피게로아의 노인 아파트에 살고 있던 한 한인은 19일 밤 10시 레이커스 경기가 끝난 후 거리에서 들려 오는 함성과 경찰 사이렌 소리를 듣고 창문으로 뛰어 갔다.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천명의 군중들은 삽시간에 폭도로 변해 옷을 벗어 던지고 지나가는 차량과 가게 유리창에 돌을 던지는가 하면 경찰차에 불을 지르고 있었다. 가로수 가지를 잘라 차에 집어 넣고 T셔츠를 불쏘시개 삼아 불을 붙이자 차들은 순식간에 횃불로 변했다. 헬기가 여러대가 뜨고 경찰차량이 수십대가 몰려 왔지만 워낙 사람수가 많아 어쩌지 못하고 방관만 하고 있었다. 밤새 계속될 것 같던 소동은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이번 소요로 최소 10여명이 부상당하고 수십개 업소가 파손됐다. 그러나 일이 터지면 제일 먼저 피해를 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한인상인들이다. 4·29 폭동 때와 마찬가지로 한인업주들이 제일 큰 손해를 봤다.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한 블럭 떨어진 올림픽과 블레인의 앰텍 건물 1층에 세 든 대여섯 한인 업체는 사건 발생 하루가 지난 20일 오후까지 유리창이 모두 박살난채 개점휴업 상태였다. 이들 가게중 가장 규모가 큰 ‘칼러 & 카피’사의 김모 사장은 “알람회사로부터 연락을 받고 밤 11시께 현장에 달려와 보니 이미 유리창이 깨지고 가게 안에 있던 컴퓨터와 복사기등이 도난당했다”며 “그나마 직원들이 모든 퇴근한 상태여서 인명피해가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말했다.

피코길에 있는 한인 가게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18년째 상점 장비 판매업을 하고 있는 피코장비사의 한 직원은 “4·29 폭동 때 털리고 8년만에 똑같은 일을 겪게 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며 “경찰이 오긴 왔지만 속수무책이었다”고 밝혔다.

경찰이 소요사태를 예상 못한 것은 아니었다. 진압장비를 갖춘 경찰 60여명이 6,000명의 군중을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밀어내려 했다. 폭도 수백명이 TV 뉴스밴과 MTA 버스 유리창을 깨고 불을 지르려 하자 경찰을 고무총알을 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정도의 병력으로 소요를 진압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불행중 다행으로 4·29 때 한번 당한 업주 대부분이 이번에는 보험에 들어 있어 물질적인 피해는 보상받을수 있을 전망이다. 92년 한인들이 타겟이 됐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재수 없이 소요 현장에 가게가 있어 당했다는 점도 다르다. 겉보기에 평온한 LA의 이면에 폭동 재발의 위험은 상존하고 있음을 이번 소요사태는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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