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물건을 팔려면

2000-06-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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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얼마전 LA 컨벤션센터에서는 세계최대의 전자게임쇼인 E3엑스포가 열렸다. 닌텐도, 소니, 세가등 세계 게임시장을 주도하는 업체들이 참석한 이 엑스포에서는 한국기업들도 참가, 미시장의 문을 힘차게 두드렸다.
그중 E사 제품은 현란한 그래픽과 독특한 게임내용으로 관심을 모았으나 그 내용이 대부분 한글이어서 막상 거래를 트려던 바이어들은 발길을 돌렸다. 이 회사제품의 시스템 지원을 담당한 한 업체에 따르면 E사 게임은 한글윈도우 전용이어서 영문 윈도우에서는 작동이 되질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백화점과 붙어있는 LA의 한 대형 샤핑몰에 가면 한국산 문구류를 전문판매하는 M업소가 들어서 있다. 한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유명브랜드라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 봤더니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액서사리와 문구류등 기막힌 아이디어 상품들이 미국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 중 눈에 띄는 종이접기 세트를 살펴보니 제품명에서 설명서까지 모두 한글로만 써 있어 아이들이 집었다가도 부모들이 다시 내려놓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이같은 현상은 한인 비즈니스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히스패닉 시장을 뚫겠다고 나선 한 화장품 업체는 스패니시로 된 제품설명서는 고사하고 동양인에게 맞게 구성된 색조화장품 세트를 들고 나갔다가 색깔이 안 맞아 고배를 마시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타운 한국음식점을 찾는 외국인들의 가장 큰 고충은 음식을 시키기 힘들다는 것이다. 음식에 대한 영어설명이 있는 곳은 그나마 몇 안되고 음식이름조차 영어로 써있지 않은 곳도 있는 실정이다.

이들 업소의 공통점은 물건을 팔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상품은 우수하고, 가격 경쟁력도 있으나 마케팅 전략이 부실해 실패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럼에도 시장조사를 위한 비즈니스 컨설팅이나 마케팅 전문회사를 이용하는 경우는 드물고, 이같은 서비스에 유달리 비용지출이 인색한 것이 한인업체들이다. 마케팅 타겟에 맞는 치밀한 전략과 준비가 아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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