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반도 평화, 희망이 보인다

2000-06-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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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의 정상이 한국전쟁 발발 50주년을 며칠 앞둔 시점에서 합의문에 서명했다. 이 남북공동 선언문은 한반도에 평화가 마침내 도래하고 있음을 알리는 전령같이 들린다. 남북한은 그렇지만 기술적으로는 아직 전쟁상태에 있다. 또 남북 양측중 아무쪽에서도 통일된 한국의 정권담당 세력은 누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를 원치 않고 있다.

일본총리는 남북정상회담을 ‘베를린장벽 붕괴’와 비교했다. 그러나 DMZ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가시철망의 보기 흉한 상처가 한반도의 한가운데를 가로 지르고 있다. 북한에서 공산정권 타도의 민중봉기도 일어나지 않았다. 또 휴전선을 따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남북한이 군비감축의 아무런 진지한 토의를 벌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 미정부 당국자들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공개적으로 보인 북한의 달라진 태도를 골돌히 연구하면서 어쩌면 지구상 최후의 냉전이 마침내 소멸될수 있다는 희미한 희망의 빛을 감지하고 있다.


"김정일은 자신을 스타로 만드는 영화제작에 성공했다." 한 전문가의 지적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 영화의 각본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나서지 못하고 있다. 백악관이나 국무부당국자들은 좀처럼 공개석상에 나서지 않던 김정일의 이 ‘갑작스런 부상’이 일과성의 변칙적 행동인지 북한 외교전략의 근본적 변화를 알리는 신호인지 갈피를 못잡고 있다.

북한이 정상회담에서의 약속을 이행하면 북한에는 국제사회로부터의 갖가지 선물이 쏟아질 것이다. 세계은행, IMF 등 국제금융기관의 차관은 물론, 미국등 서방세계 원조 등이 그 선물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원조에는 다른 것들도 따라 붙는다. 갖가지 통신장비, 외국인, 그리고 바깥 세상의 아이디어도 따라 들어가게 된다. 정부운영 방송에만 주파수가 고착된 라디오만 허용되는 나라에서 이는 일종의 ‘아나테마’(몹씨 꺼림을 받는 것)가 될 수밖에 없다.

어찌됐든 김정일의 남북공동선언문 서명은 북한의 세계 포용 전술에서 분명히 변화가 생겼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변화가 단지 작전상의 변화인지, 아니면 새로운 방향으로의 전환인지 확실히 구별해 말하기에는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북한의 역사는 전쟁, 테러리즘, 핵무기개발등으로 점철돼 있다. 이 문제들은 남북정상회담에서 심도 있게 다뤄지지 않았다. 이같은 정황들을 감안할 때 클린턴 행정부가 현 상황에서 내릴 수 있는 안전한 결론은 희망의 서광은 비친다는 것. 더 이상의 판단은 유보 할 수밖에 없다는 게 현 미행정부의 입장으로 보인다.
(데이빗 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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