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통일은 산 넘어 산

2000-06-1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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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5월 4일 박정희 대통령의 밀사로 평양을 방문중이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한밤중에 방문 두드리는 소리에 선잠에서 깨어났다. “무슨 일입니까?” 이후락이 묻자 북측 관계자는 “따라 와 보시면 압니다”라고 말하면서 김일성에게 데리고 갔다. 김일성은 “혼자서 적진에 들어오다니 담이 크구만” 하고 인사를 했다. 분위기가 좀 무르익자 “68년 청와대 습격 사건은 내가 모르게 밑에 아이들이 한 짓이니 박정희에게 미안하다고 전해주구레”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 만남이 계기가 돼 성사된 것이 그해 7월 4일 발표된 7·4 공동성명이다. 남북한이 외세를 배격하고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룩하자는 이 성명은 지금 남북정상회담에 못지 않은 흥분과 기대를 국내외에 불러 일으켰었다.

그러나 불과 석달후 박정희는 비상계엄과 유신헌법을 선포, 남북관계 개선으로 얻은 인기를 독재 체제 구축에 이용했다. 김일성도 질세라 같은 해 12월 북한헌법을 고쳐 당시 수상이었던 자신의 직함을 국가 주석으로 높인후 다음 해에는 김대중 납치사건을 핑계로 한국과의 대화를 일방적으로 중단시켰다.


남북정상회담 동안 한국 언론들은 마치 당장 통일이 이뤄질 것 같이 야단법석이었다. 김정일이 순안 공항에 마중 나온 것은 이미 북측이 한국 정부에 통고한 사실이고 평양 방송이 당일 아침 보도했음에도 전혀 예기 못한 일인 것처럼 떠든 것은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80 가까운 노구를 이끌고 한국 대통령이 해방후 처음 평양을 방문했으면 김정일이 공항에 마중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그것을 마치 각별한 배려인 것처럼 한국언론이 북치고 장구치는 것은 과장보도에 속한다.


김정일이 실제로 어떤 인물이냐는 아직도 미지수다. 김정일은 회담이 열리기 하루전 말도 안되는 구실로 회담 연기를 통보한 인물이다. 98년 10월 30일에는 자정이 넘어 이후락을 불러낸 아버지 흉내를 내려는 듯 밤 10시25분에 백화원 초대소에 머물고 있던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느닷없이 방문했다.

김정일이 이번 회담을 통해 얻으려는 것은 평화통일이 아니고 자신의 체제 안정이다. 김정일이 과연 평화통일 된 나라에서 자유선거를 실시하면 집권할수 있을까. 김정일이 자기 자리를 내놓으면서까지 남북통일을 바란다는 것은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번 회담은 처음부터 통일문제만은 한계성을 갖는 이율배반을 지닌 셈이다. 앞으로 남북 정상회담이 몇번 더 열릴지 모르겠으나 이산가족 상봉, 남북교류는 몰라도 통일문제만은 산넘어 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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