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북한식 드레스 코드

2000-06-1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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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과 중국사람은 한 눈에 구분됩니다. 일본사람 하고는 잘 구분이 안돼요. 멀리서 보고 일본인 관광단이구나 생각했는데 가까이 가보면 한국사람들이지요."

최근 중국을 갔다 온 분의 말이다. 이 분의 한국인과 중국인 구별 방법은 우선 옷차림을 살피는 것이라고 했다. 같은 티셔츠를 입어도 어딘가 다르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인과 일본인은 얼핏 구별이 안됐다는 게 이 분의 지적이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옷차림과 분위기가 중국이라는 환경에서 볼 때 아주 흡사하더라는 이야기다.


다국적 기업시대 비즈니스맨의 드레스 코드는 정장차림에 넥타이를 맨 복장이다. 이 드레스 코드는 세계 어디서나 통한다. 드레스 코드를 준수 한다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기본적으로 같은 가치관을 공유한다는 의미다. 기본바탕이 같다는 것은 일단 상대를 신뢰 할 수 있고, 서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70년대초 중국은 처음 국제무대에 나오면서 국제 사회의 드레스 코드를 무시했다. ‘모택동복’이 중국이 고집한 드레스 코드였다. 이후 중국이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입지를 넓혀가면서 모택동복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오늘날 국제적 드레스 코드를 지키고 있다. 중국은 국제 사회의 관행을 존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난달 말께 김정일의 중국방문이 전격 이루어졌다. 17년만에 처음 해외 나들이인 김정일의 중국방문은 여러면에서 ‘북한이나 벌일 수 있는 깜짝 쇼’적인 요소를 보였다.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될 북경을 평양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며칠씩 걸려 갔다는 게 우선 예상을 절하는 일. 또 인터넷 시대에 북경방문이라는 며칠간의 국가적 행사를 극비에 부쳤다는 것도 깜짝 쇼적인 요소였다.

진짜 여러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한 일은 김정일이 강택민등 중국 지도자들과 만나는 모습이었던 모양이다. 인민복 차림에 가슴에는 김일성 배지같은 것을 단 김정일이 악수를 청하는 모습에 일부 중국지도자들이 보인 얼떨떨한 표정이 TV화면을 통해 여과없이 방영된 것이다. 이 모습에는 북경시민들도 상당한 거리감을 보였다는 소식이다.

김대중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앞두고 또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북한측이 회담 일정을 갑짜기 하루 연기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온 것이다. 국제적 의전관행상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기상천외의 일은 그러나 ‘인민복’을 고집하고 있는 김정일 체제로서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국제사회의 드레스 코드를 외면하는 마당에 국제적 의전관행도 얼마든지 무시 할 수 있는 게 오늘날의 북한식 논리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패션부터 달라져야 남북대화가 잘 풀리지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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