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북정상회담, 결과가 주목된다

2000-06-1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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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버트 매닝 전 국무부 정책보좌관·워싱턴 포스트지 특별기고)

북한의 김정일은 아시아의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다. 그는 좀처럼 공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김정일이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는 때는 어쩌다 가끔 있는 군부대 방문시다. 김정일의 이같은 불가해성은 바로 한반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불붙기 쉬운 발화점이 될 수 있는 이유가 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오는 12일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이 회담에 김정일이 참석하는 것 자체만 역사적 이벤트가 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김정일의 향후 정책방향 설정에 중요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빛나는 업적이 될 수도 있다. 이번 정상회담은 다른 변화도 가져 올 수 있다. 북한 핵위기 발생후 지난 7년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치에서 미국이 담당해온 중심적 위치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번 정상회담이 상징적 만남에 그칠지, 남북한 관계 개선에 상당히 구체적 진전을 가져올지는 왜 김정일이 예상을 깨고 김대중 대통령의 회담 제의를 받아들였는지에 달려 있다.

김정일이 회담을 받아들인 이유 역시 미스터리라는 게 정직한 답인 것 같다. 냉전이 끝난 후 평양 당국은 과거 소련을 대신할 후원자로 미국에 시선을 집중시켜 왔다. 북한은 사실상 미국으로부터 그동안 6억달러의 원조를 끌어내 동북아 지역에서 최대 미원조 수혜국이 됐다. 이른바 ‘통미봉남’ 전략을 북한은 구사해온 것이다. 북한은 그런데 왜 돌연히 한국쪽으로 기울게 됐을까?

이번 정상회담 수락을 평양측이 최근 펴온 외교적 평화공세의 일환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보다는 미국과의 쌍무적 외교를 지연시키려는 책략으로 보는 지적이 더 설득력이 있다.


지난해 페리 보고서가 작성된 후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에 대해 보다 포용적인 정책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페리 플랜에 따르면 평양측은 많은 부문에서 양보를 해야 된다. 미사일 프로그램등 군사적 위협감소를 위한 구체적 조치까지 양보조건에 포함돼 있다. 북한측 입장에서 볼 때 무기개발 프로그램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사항 일 수도 있다.

이같은 입장에서 북한이 외교적 돌파구를 찾은 게 남북정상회담이라는 해석이 가능하게 된다. 페리 플랜에 따라 미국측이 제시한 양보 조건을 따르기보다는 다소간 모험은 따르지만 남북정상회담을 택하는 게 낫다는 계산이다. 거기다가 이런 점도 고려될 수 있다. 11월 선거결과 보다 보수적 입장의 미행정부가 들어설 수도 있다. 또 한국도 오는 2002년에 북한에 대해 그다지 관대하지 않은 대통령이 나올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이 타이밍으로 한국과의 회담에 나섬으로써 외교적 쿠션을 미리 확보해 둘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추구하고 있는 것은 신 데탕트다. 김대통령은 3개월전 베를린 성명을 통해 3가지를 약속했다. 북한이 무력도발을 포기하고, 핵무기개발 중지 서약을 지키며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포기할 경우 북한의 안보를 보장하고 경제적 지원을 하며, 북한이 국제사회에 진출하는 것을 돕겠다는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그러므로 김대통령의 대협상 정책이 궤도에 오르는 계기가 될지, 아니면 실패로 끝날지 중대 기로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문제는 평양측이 정상회담 참석의사만 보였지 정책노선 변화의 시그널은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는데 있다. 북한은 최근 들어 지난 10년래 최대의 군사 기동훈련을 펼쳤다. 경제가 결단 난 마당에 북한이 어떻게 이같이 대대적인 기동훈련을 할 수 있는지 북한 관측통들은 의아해 하고 있다. 북한은 또 장거리 미사일 개발계획을 늦추겠다는 아무런 시사도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과 같이 개혁 개방정책을 도입하겠다는 의사도 전혀 내비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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