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졸업보다 먼저 찾아온 장례식

2000-06-1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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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패스처 아카데미 교사 생활을 한지 4년째다. 이곳은 보통 학교와는 다르다. 커리큘럼도 독특하며 가르치는 방식도 개혁적이다. 학생들은 교과서에 써 있는 것만 알아서는 안되고 인생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게 학교의 교육방침이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공부도 열심히 하지만 자기 자신과 앞으로 각자 인생을 어떻게 꾸며 나갈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2년전 서로 사촌 사이인 두 학생을 가르친 적이 있다. 공립학교를 다니며 똑똑하고 학교 공부도 잘 하는 장래가 유망한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10학년경 그들은 학교를 빠지기 시작하더니 아예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마약을 한 것도 아니었다. 어찌된 이유에서인지 학교 공부에 흥미를 잃었으며 이 때문에 부모들의 속을 썩혔다. 그들은 어덜트 스쿨에 등록해 뒤처진 학업을 보충하려 했으나 주위의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했으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

이들이 그린패스처 아카데미에 온 것은 이 때였다. 자기들과 처지가 비슷한 학생 사이에서 그들은 친구를 새로 사귀고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그동안 밀렸던 학교 공부도 만회해 졸업할수 있게 됐다. 대학 입학 허가도 받았으며 부모들도 자녀들에 대해 행복과 프라이드를 느끼게 됐다.


그러나 이 무렵 비극이 찾아왔다. 졸업을 한 달 앞두고 친구집을 찾아 가는 도중에 누군가와 말다툼이 벌어졌다. 이들이 싸우는 것을 자제하자 상대방은 차를 몰고 그곳을 떠났다. 그러나 떠나며 차안에서 쏜 총 한방이 사촌 한 명의 가슴에 맞았다. 그 학생은 졸업을 한달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났다. 나머지 사촌은 지금 대학에 진학, 생물학을 전공하며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그 학생은 지금도 죽은 사촌에 대해 매일 생각한다고 나한테 말했다. 한 때 잘못된 길을 갔으나 마음을 고쳐 먹고 새 인생을 살려 하는 참에 비극적으로 숨을 거둔 것을 애통해 했다.

이 사건은 내가 그린패스처에 있으면서 겪은 숱한 사연중 하나이다. 학생들은 새출발을 하기 위해 이곳에 온다. 그중에는 개과천선해 이제는 훌륭한 사회의 구성원이 돼 있는 사람도 많다. 부모들도 달라진 자식들의 모습을 보며 더 할바 없이 기뻐한다. 일반학교에서 평범하게 학창시절을 보낸 학생 부모보다 탈선했다 새인생을 사는 학생들의 부모가 더 큰 기쁨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잘 지내건 못 지내건 부모가 자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고등학교 시절은 힘든 시기며 어느 때보다 부모의 사랑과 도움을 필요로 한다.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는 학생보다 잘 못하는 학생일수록 더욱 그렇다. 자녀들과 자주 대화를 갖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부모는 자녀를 어린 성인으로 존중해야 한다. 10대는 어린애가 아니다. 엄하게 꾸짖는 것은 역효과를 내기 쉽다. 10대의 고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10대도 어른에 못지 않는 스트레스를 받지만 이를 잘 매니지할 능력이 없다. 자녀가 어려울 때 온 가족이 도와주지 않으면 그 가정은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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