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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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책임’ 윤석열의 ‘책임’

2022-12-06 (화)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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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4월15일 열린 보스턴 마라톤 중 발생한 폭탄테러로 3명이 사망하고 18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테러 직후 오마바 당시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강력한 응징의지와 함께 테러가 발생한 것은 오로지 자신의 책임이라며 국민들 앞에 진솔하게 사과했다.

그는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 안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데 대해 그 누구도 탓을 할 수 없는 까닭은 내가 최종 책임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어떤 사법기관에 대한 질책도 없었다. 대통령은 나라 안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안전사고와 재난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자리라는 확고한 인식이 있을 때 나올 수 있는 발언이었다.

그런데 무려 158명이 숨진 이태원 참사 후 윤석열 대통령이 보이고 있는 태도는 오바마와 너무나도 대조된다. 자신의 정치적 책임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은 회피하면서 법률적 책임만을 운운하고 있다. 참사 발생 후 열린 ‘국가안전시스템 보장회의’ 석상에서 그는 “엄연히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에게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못 박았다. 그런 맥락이라면 오바마는 현대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어리석은 자책을 한 셈이 된다.


그러면서 화와 짜증이 한껏 묻어나는 목소리로 경찰을 쥐 잡듯이 몰아세웠다. 마치 경찰의 잘못 때문에 자신이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됐다는 듯 야단과 호통을 치는 모습은 보기에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기자회견이나 대국민 메시지는 없었다. 한번이면 족할 조문은 매일매일 다니면서도 정작 자신과 현 정부의 책임에 대한 진솔한 인정과 사과는 외면했다. 그냥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라는 정도의 언급만 슬쩍슬쩍 했을 뿐이다. 대통령의 태도에 ‘책임회피’와 ‘유체이탈’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책임’과 관련한 대통령의 인식은 취임 후 지속됐던 인사 참사 와중에서도 확인된바 있다. 함량 미달 인사들을 고른 자신의 안목과 판단에 대한 자성은 없이 오로지 모든 것은 적대적 야당과 비뚤어진 언론 때문이라는 ‘남 탓’만 이어졌다. 정권 초기 상당한 국정동력 상실을 초래한 인사 참사 사태를 겪고도 대통령의 근본 인식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음을 이태원 참사는 확인시켜주고 있다.

이런 윤석열 대통령에게 조언을 하고 싶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한국을 방문했을 때 건넨 선물을 꺼내 책상 위에 놓아두기 바란다. 바이든은 윤 대통령에게 ‘The buck stops here’라는 문구가 새겨진 명패를 선물했다.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는 뜻이다.

트루먼 대통령이 자신의 책상 위에 항상 올려두고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을 되새겼던 것으로 유명한 문구이다. 트루먼은 이 문구를 좌우명으로 삼았다. 그는 “책임을 질 수 없다면 책임을 맡지도 말라”(If you can’t stand the heat, get out of the kitchen)는 말도 했다. 책임질 각오가 없으면 대통령을 해선 안 되고, 일단 대통령이 됐다면 모든 책임을 기꺼이 감당해야 한다는 얘기다.

대통령으로서 트루먼은 화려함과 거리가 멀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역대 대통령 순위평가에서 그의 위치는 계속 올라가고 있다. 리더로서 그가 보여준 투철한 책임감이 후대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리더가 갖춰야 할 수많은 덕목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책임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조직이나 무리의 리더를 찾을 때 “책임자가 누구냐”고 묻는 것이다.

바이든은 국가리더로서 막중한 책임을 잘 새겨달라는 우정의 조언으로 윤 대통령에게 이 명패를 건넸을 것이다. 그러니 어딘가 보관돼 있을 이 명패를 찾아내 집무실 책상위에 올려놓기 바란다. 그리고 매일 이것을 읽으면서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헌법’이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요구하고 있는 무한책임에 대해 되새겨봤으면 한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재임 시와 대선후보 시절 사사건건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웠다. 그는 “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 극치에 달했다”고 비판하면서 “위기상황에서 정부의 존재 의의가 있는 것인데 이 정부는 존재할 이유를 증명하지 못했다”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그리고 그가 퍼부었던 비난과 비판은 지금 고스란히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윤적윤’ 즉 바로 윤석열 자신이 윤석열의 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윤석열 정부는 지난 7개월 동안 얼마나 설득력 있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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