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요 에세이] 눈물

2026-04-08 (수) 12:00:00 이명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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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대학 도서관 서고를 무시로 드나들면서 손 가는 대로 책을 빌려 본 적이 있다. 같은 교직원으로서의 혜택인 셈이다. 서고는 지하 3층까지 있는데 내려갈수록 오래된 먼지 냄새와 싸늘한 냉기가 돌아 공포영화를 찍어도 좋을 법한 정적과 한기가 서려 있었다. 그때 읽은 책 중에 아직도 잊히지 않는 동화가 있다.

주인공인 어린 왕자에게 스승이 땅바닥에 ‘신(God)’이 라고 쓰고, 읽게 한 다음 거꾸로 써 보라 하니 ‘개(Dog)’가 된다. 그러면서 인간의 마음속엔 이 두 가지가 늘 함께 있다고 가르친다. 그 후 왕이 죽고 왕자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재판을 받는데 어린 왕자는 무죄를 주장하며 억울함에 눈물을 흘리고 만다. 그 눈물을 보고 판사는 가엾어하기는커녕 더 의심스러워하며 불필요한 눈물을 흘렸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하고 감옥에 보낸다. 그때 나는 어린 왕자의 눈물이 왜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눈물을 흘리는 것은, 진정성 있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던 나로서는 하나의 충격이었다. 아마도 눈물에 대한 동서양의 문화차이가 있나 보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는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눈물을 감추기보다 마음껏 내보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긴 것 같다. 정이 많은 민족으로서 눈물에 관대하다고 할까? 하긴 한국 옛 전통에는 장례식에서 곡을 대신해 주는 곡장이란 직업이 있을 정도니까. 울음은 참는 것보다 여봐란듯이 과장되게 눈물바다를 보이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법도 하다. 반면에 서양 영화에서는 죽음 앞에서도 울부짖는 것을 별로 못 본 것 같다. 그 동화의 영향 탓인지 나는 점점 눈물 흘리는 것에 굉장히 엄격해지고 냉정해졌다.


그런데도 2016년에 나온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시(Manchester by the Sea)를 보았을 때 그때만큼이나 문화 충격을 느꼈다. 죽음 앞에서 주인공은 전혀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물론 감독은 다른 식으로 슬픔을 표현하기는 했다. 결코 치유될 수 없는 고통을 지닌 주인공의 삶을, 그 건조하고 스산한 삶을 담담하고 담백하게 잘 그려 내었다. 이곳 엘에이 한국인이 살기 좋은 익숙한 우리 문화에 젖어 있다 보니 이십여 년 살아온 미국인데도 그들의 문화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래도 눈물 대신 폭력으로 표현되는 주인공의 슬픔이 묵직하게 전해졌다.

이 영화가 눈물 없이도 오래도록 길게 여운이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 불행이 어떤 부주의, 대수롭지 않게 흘려버린 일상에서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어서 그런 모양이다. 나의 의지나 능력이 미치지 않는 거대한 사건에 의한 비극이라면 운명으로 돌리며 체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너무도 사소한, 괜찮게 넘어갈 수도 있는 일상 중에 일어나는 예기치 못한 불행은 누구도 감당하기 힘들 것 같다. 거기엔 회한과 자신에 대한 질책이 평생 따라다니며 좀체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통해 눈에 눈물을 보이건 아니건 간에 동서양 슬픔의 깊이는 같음을 공감한다.

<이명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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