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한때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어떤 지적 영향도 받지 않는다고 믿는 실천적인 사람들조차 대개는 이미 사라진 어떤 경제학자의 노예일 뿐이다.” 이 재치 있는 논평은 결국 아이러니한 예언으로 굳어졌고, 케인스 자신도 그 ‘사라진 경제학자’ 중 하나가 됐다.
그의 경기 대응 처방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질되어, 정부 지출이 일종의 영구기관처럼 작동한다는 믿음으로 바뀌었다. 지출이 일자리를 만들고, 일자리가 다시 지출을 만들어낸다는 논리로, 계속 늘어나는 재정 지출을 통해 점점 더 선순환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왜곡은 팬데믹 이후 회복 과정에서 불필요한 경기 부양을 초래했고, 이어 불필요한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안타깝게도 이런 현상은 공공정책 논쟁에서 흔히 나타난다. 특정 시기의 조건에 기반한 전문가들의 논쟁은 언론 보도 속에서 짧은 문장으로 단순화되고, 몇 년이 지난 뒤에는 어렴풋이 기억된 형태로 현재 상황에 맞지 않는 정책을 낳거나, 심지어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모습이다. 이는 부분적으로 대공황이 너무나 큰 피해를 남겼고, 그 정치적 영향이 많은 사람들에게 깊이 각인된 탓에, 여전히 많은 이들이 시간 왜곡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고향 워싱턴 DC에서는 민주사회주의자인 제니즈 루이스 조지가 시장 선거에 출마해 ‘맘다니 라이트’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전형적인 모델보다 카리스마는 절반, 무상 혜택은 3분의 1 정도 줄인 형태다. 이는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이 입법부의 저항과 상당한 재정적자 때문에 이미 정책을 후퇴시킨 상황을 고려하면 현명한 조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많은 야심을 보여주고 있다. 임차인 친화적이고 임대인에 비판적인 정치 성향을 보여온 루이스 조지는 세입자 우선 매입권법을 강화하고, 생애 첫 주택 구입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하며, 공공주택 투자를 늘리겠다고 주장한다. 또한 보편적 보육 혜택, 식품보조프로그램(SNAP) 수혜자 무료 버스 이용, 노동조합 보호 강화, 공공요금 규제 강화와 보조금 확대, 그리고 공공 안전에 대한 ‘근본 원인 접근법’을 약속하고 있다. 혼잡 통행료 같은 기술 관료적 교통 정책이나 경제 개발에 대한 모호한 언급도 일부 포함돼 있지만, 그 핵심 논리는 미국 민주사회주의자협회(DSA)의 전형적인 방향, 즉 임대인과 대기업, 부유한 납세자에게는 부담을 늘리고, 소외계층에는 혜택을 확대하는 데 있다.
이러한 목표는 가치 있는 것일 수 있으며, 다소 낙관적이라 하더라도 실제 시장이 된 후 조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공약이 생활비 부담에 시달리는 노동자 계층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는 점이 아니라, 그 자체가 전혀 다른 시대를 전제로 설계된 것처럼 보인다는 데 있다. 워싱턴 DC가 성장하던 시기, 성장의 과실을 어떻게 관리하고 분배할지가 핵심이었던 시대의 논리라는 것이다.
현재의 워싱턴 DC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팬데믹 이후 범죄 증가와 재택근무 확산으로 주거 및 사무실 수요가 교외로 이동했다. 범죄는 감소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연방 공무원 감축은 도시 경제에 또 다른 타격을 줬다. 현재 워싱턴 DC의 사무실 공실률은 18.1%에 달하고, 임대료는 정체돼 있으며, 임금과 고용 증가율은 전국 평균에 못 미친다. 주택시장 역시 버지니아 교외 지역에 비해 약화됐다. 그렇다면 세금을 올릴 것인가? 아니면 범죄가 줄었으니 경찰 예산을 삭감할 것인가? 문제는 워싱턴 DC가 매우 작은 도시라는 점이다. 상황이 어려워지면 납세자와 기업이 교외로 쉽게 빠져나갈 수 있다. 공공 질서가 악화되거나 세금 또는 통근 비용이 증가하면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도심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동시에 임대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 개발업자들의 의욕을 꺾게 되는데, 이들은 이미 금리 상승과 임대료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로 2019년에는 다세대 주택 5,777가구에 대한 건축 허가가 발급됐지만, 2025년에는 1,410가구로 급감했다.
루이스 조지가 당선된다면, 그녀는 맘다니와 같은 교훈을, 그것보다 더 강하게 배우게 될 것이다. 2026년의 도시를 2016년의 아이디어로 운영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 교훈을 배워야 하는 사람은 그들만이 아니다.
캘리포니아의 억만장자세 주민투표안을 보자. 이는 대부분의 억만장자들이 순순히 남아 자산의 5%를 세금으로 낼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세금 규모를 고려하면 이는 10년 전에도 의심스러운 전제였고, 줌 원격 근무가 보편화된 지금 시대에는 더욱 현실성이 떨어진다. 일부 대형 납세자들이 이미 더 낮은 세금 부과 지역으로 떠났거나 이주를 계획하고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혹시 내가 진보 진영만 비판한다고 생각한다면, 보수 진영의 ‘워크(woke)’ 집착을 보자. 나 역시 5년 전에는 이에 공감했었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비난받거나 해고되는 일이 빈번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기관들은 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을 해체하려 경쟁하고 있고, 우파 인플루언서들은 공개적으로 반유대주의를 드러내고 있으며, ‘캔슬 문화’의 주역들은 이제 블루스카이에서 서로에게 소리치는 수준으로 축소됐다. 유권자들 역시 이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루이스 조지가 이번에도 과거의 히트곡을 다시 들려주며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령 유권자들이 이러한 향수에 호응하더라도, 실제 통치는 보다 현대적인 접근을 필요로 한다. 오늘의 문제에는 오늘의 해법이 필요하며, 왕년의 히트곡들로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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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건 매카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