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경] 위안화의 ‘유소작위’ 전략
2026-03-20 (금) 12:00:00
최형욱 / 서울경제 논설위원
다음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한중 통화스와프 체결 협상에 관여한 한 경제 관료의 전언이다. 당시 우리 측 제안에 중국 측의 첫 반응은 미온적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미국 달러화 과잉 공급이 금융 불안의 원인 중 하나라는 지적이 많은데 위안화가 한국의 외환위기 방어에 쓰인다면 위안화 국제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논리를 펴자 중국 측이 돌변했다고 한다. 공교롭게 중국 정부는 이듬해부터 무역결제·금융거래에서 위안화 사용 확대 등 위안화 국제화를 본격 추진했다.
최근 이란이 위안화로 대금을 결제하는 유조선만 호르무즈해협 통과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중동 전쟁이 미중 간 통화 패권 전쟁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동 국가가 석유 판매금을 달러로 받아 미국 국채에 재투자하는 ‘페트로 달러’ 체제는 미국의 기축통화국 지위를 떠받치는 주요 축이다. 이에 맞서 중국도 시진핑 국가주석이 2022년 “원유와 천연가스의 위안화 결제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한 후 ‘페트로 위안’을 적극 추진 중이다. 이미 러시아와 인도·브라질·이란 등이 위안화로 원유 대금을 결제하고 있다.
다만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 작업은 ‘대국굴기’를 내세운 외교적 강공책보다는 덩샤오핑 때부터 내려온 ‘유소작위(有所作爲·해야 할 일은 적극 나서서 이뤄낸다)’ 전략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드러내 놓고 달러 패권에 도전했다가 역공을 맞을 수 있고 중국 내 금융 안정성마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중국은 통화스와프 체결 확대, 위안화 국제결제시스템(CIPS) 구축, 일대일로 국가와의 위안화 결제 등 저변을 넓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을 추월하는 등 전환점이 도래할 경우 ‘유소작위’를 넘어 ‘위안화굴기’ 공세가 노골화할 것이 분명하다.
중국이 한국 등 인접국이나 희토류 등 핵심 자원에 대해 위안화 결제를 요구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먼 미래의 일로 치부하지 말고 지금부터 대처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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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욱 / 서울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