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완연하던 날 마트에 들어섰다. 바로 앞에 유모차를 조심스럽게 밀고 들어가는 젊은 부부가 있었다. 유모차에 앉은 아기는 돌을 막 넘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모자를 예쁘게 씌우고 부부는 연신 아가의 얼굴을 쳐다보며 눈웃음을 보내었다. 피부가 유난히 흰 그는 다운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눈꼬리가 약간은 올라가고 몸 움직임이 활발하지 못하였다.
병을 안고 평생을 살아가야 할 아이를 위한 그 젊은 부모의 자상한 배려가 마음을 숙연하게 했다. 이 세상의 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아픔을 지켜보며 그 고통을 안고 함께 살아가고 있다. 육체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정신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존경하는 스승의 자녀 중에 희귀병을 앓고 있는 아들이 떠 올랐다. 삼남 이녀 다복한 가정에 막내는 아들이었다. 걸음마를 배우고 아장아장 걸을 때만 해도 그가 희귀병에 걸릴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아이는 몸의 움직임이 불편해 보였다. 누울 때와 일어서는 자세가 편해 보이지 않았다. 잘 넘어지기도 했다. 근육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걸음마가 불편해 보였다. 정밀 진단 결과는 온 가족에게 큰 충격이었다. 병명은 ‘뒤셴형 근이영양증(Duchenne muscular dystrophy: DMD)’이라는 아주 희귀한 질병이었다. 이 병은 대개 2~5세 사이에 시작이 되는 데 증세는 근육 위축이라고 한다.
이 병에 걸리면 걷거나 계단을 오르는 데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게 된다. 더 힘든 것은 10-14세가 되면 걸을 수도 없게 되는 것이다. 더 진전되면 손과 손가락 소근육의 기능도 잃게 된다. 가벼운 자극에도 사지가 탈구될 수 있어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질병이다.
온 식구는 막내둥이를 위해서 모든 정성을 모았다. 어머니는 이 아들을 ‘복덩이’라고 불렀다. 근육의 기능을 최대한 유지하고 보존하도록 가족 전체가 막내둥이의 손발이 되어주었다. 정서적으로도 낙심하지 않고 잘 극복하도록 모든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가족들의 간절함은 막내둥이에게 전달되고 큰 힘과 격려가 되었다. 열 살이 넘어서자 근육은 더 약해져 걸을 수도 없게 되었다.
침대에서 하루 종일 버텨야 하는 일상이 되었다. 곁에는 어머니가 24시간 함께해 주었고 수시로 형제, 자매들이 손, 발이 되어 주었다. 20살을 넘기기 힘들다는 병원 진단이었지만 그는 지금 50세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 세월 동안 그에게 침대는 유일한 삶의 터전이었다.
지난해 그는 이렇게 일기에 적었다. “오늘 48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내가 희귀 난치병 환자와 중증 장애인으로서 지금까지 걸어온 삶의 여정을 생각하면 너무너무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복덩이 찾아 달려옵니다.
긴 세월 천정을 하늘 삼아, 보배처럼 소중한 하루의 삶, 손잡아 주시는 여든의 어머님 곁에서… 기다릴 수 없는 조급함으로 복덩이 찾아 달려오는 어머니! 오늘의 삶도 풍요합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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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두 서북미수필가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