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하순 개최된 북한의 제9차 당대회는 북한의 대외전략과 한반도 정세 인식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정치적 계기였다. 당대회에서 제시된 대미 전략, 대남 정책, 그리고 국제질서 인식은 변화하는 국제정치 환경 속에서 북한이 자국의 전략적 위치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이러한 인식은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과 대비되며, 현재 한반도 정세가 서로 다른 전략적 접근이 병존하는 구조 속에 놓여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당대회 결정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핵무력을 중심으로 한 국가전략의 제도적 공고화이다. 당대회 보도는 미국을 국제적 긴장의 주요 원인으로 규정하며 향후에도 대미 강경 기조를 유지할 것임을 강조하였다. 이는 핵무력이 단순한 협상 수단을 넘어 체제안보와 국가전략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북한은 미국이 자국의 ‘현 지위’를 인정하고 대북 적대정책을 철회할 경우 관계 개선의 가능성을 언급하였다. 여기서 ‘현 지위’는 헌법에 명시된 핵보유국 지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입장은 북미 관계를 비핵화 협상의 틀이 아니라 핵보유 현실을 전제로 한 군비통제 혹은 전략적 위험관리의 틀 속에서 재구성하려는 전략적 구상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대남 정책에서도 중요한 변화가 나타났다. 북한은 남북 관계를 더 이상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로 규정하지 않고 ‘가장 적대적인 국가 대 국가 관계’로 규정하였다. 또한 남북 대화와 협력을 전제로 한 기존 접근에서 벗어나 한국을 동족의 범주에서 제외하는 서술을 제시함으로써 남북 관계의 정치적·담론적 성격을 재정의하였다. 이는 남북 관계를 통일 문제 중심의 특수 관계가 아니라 일반적인 국제관계의 틀 속에서 재구성하려는 전략적 인식 변화를 보여준다.
군사적 측면에서도 북한은 대응 기준의 변화를 강조하였다. 당대회 보도는 선제공격 임무를 포함한 군사적 대응 능력을 언급하면서 한국의 행동이 자국의 안보 환경을 위협한다고 판단될 경우 다양한 대응 수단을 사용할 수 있음을 시사하였다. 또한 남부 국경선 요새화와 방사포·전술미사일 등 대남 타격 수단의 증강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남북 간 군사적 긴장 구조를 장기적으로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될 수 있다.
북한의 이러한 전략 변화는 국제정세 인식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북한은 현재 국제질서를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가 약화되고 다극적 권력구조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단계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특히 미국 중심 질서에 대해서는 대결적 태도를 유지하는 한편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반제국주의 국가들과의 외교적 연대를 확대하려는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는 국제정치 구조의 변화를 외교적 활동 공간 확대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전략적 인식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한국 정부는 이러한 북한 전략과는 다른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한반도 평화공존을 핵심 목표로 설정하고 남북 간 평화공존의 제도화와 공동성장 기반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북한 체제에 대한 존중, 흡수통일의 불추구, 적대행위의 불추진이라는 원칙을 바탕으로 남북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평화체제 구축을 모색하려는 접근이다.
이러한 정책 기조는 2026년 3·1절 기념사에서도 확인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반도의 미래가 대결이 아니라 공존과 협력 속에서 형성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북측 체제를 존중하고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하였다. 또한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회복을 위한 조치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북측과의 대화 재개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종합하면 현재 한반도 정세는 북한의 전략적 강경 노선과 한국 정부의 평화공존 정책이 동시에 존재하는 구조 속에 놓여 있다.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를 중심으로 한 억제 전략을 강화하면서 남북 관계를 국가 간 관계로 재정의하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는 긴장 완화와 협력을 통해 평화공존의 제도적 틀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 차이는 단기적으로 긴장을 지속시킬 가능성이 있으나, 북한이 국제질서의 다극화 속에서 조건부 관계 개선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은 외교적 협상의 가능성이 완전히 차단된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향후 한반도 정세는 미중 전략 경쟁, 북러 및 북중 협력, 동북아 외교 환경과 같은 국제정치 요인과 함께 북한의 전략 판단과 한국 정부의 평화 정책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느냐에 따라 중요한 변화를 맞이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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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문석 서울사이버대학교 통일안보북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