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와 상담을 하다보면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자산은 충분한데, 왜 이렇게 불안한지 모르겠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순처럼 들린다. 하지만 은퇴 후 불안의 원인은 자산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그 자산을 바라보는 기준이 여전히 은퇴 전 기준에 머물러있기 때문이다.
많은 은퇴자들은 은퇴 이후에도 자산을 ‘총액’으로만 바라본다. 계좌잔고가 얼마인지, 작년 대비 수익률이 어땠는지, 시장이 오르면 안도하고 떨어지면 불안해한다. 하지만 은퇴 후 자산관리에서 이런 시선은 불안을 줄여주지 못한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은 더 커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잔고와 수익률은 은퇴자의 하루를 책임져주지 않기 때문이다.
은퇴자의 삶은 매달 반복된다. 생활비가 필요하고, 의료비와 같은 예기치 못한 지출이 생기며, 배우자와의 생활, 가족지원, 여가계획까지 모두 현실적인 현금 흐름 위에서 이루어진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산이 얼마인가”가 아니라 “이번 달과 다음 달에 얼마가 들어오는가”다. 그런데도 많은 은퇴자들이 소득이 아닌 수익률을 기준으로 자산을 관리하려한다. 이 지점에서 은퇴 후 소득설계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소득을 ‘인출’로만 해결하려는 접근이다. 매년 시장 상황을 보며 얼마를 꺼낼지 결정하고, 수익률이 좋을 때는 안심하다가 나쁠 때는 지출을 줄인다. 이 방식은 계산상으로는 가능해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은퇴자의 삶을 점점 위축시킨다. 여행을 미루고, 필요한 지출을 망설이고, 시장이 회복되기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은퇴 후 시간은 넉넉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다림을 허락해 주지 않는다.
은퇴 후 소득설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기준이 바뀌어야한다. 자산을 ‘언제 꺼내쓸 것인가’의 관점이 아니라, ‘어떤 소득이 자동으로 만들어지는가’의 관점으로 봐야한다. 시장이 좋든 나쁘든, 생활의 기본이 유지되는 구조가 먼저 마련되어야한다. 이 구조가 갖춰져 있을 때, 나머지 자산은 비로소 여유를 가지고 운용할 수 있다.
많은 은퇴자들이 소득구조를 너무 늦게 고민한다. 아직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장이 다시 좋아질 것 같아서, 조금 더 지켜보자는 이유로 결정을 미룬다. 하지만 은퇴 후 소득설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선택지가 넓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조건은 까다로워지고, 유연성은 줄어든다. 은퇴 초반에 소득의 뼈대를 만들어두느냐, 아니면 나중에 급하게 대안을 찾느냐에 따라 은퇴의 안정성은 크게 달라진다.
은퇴 후 자산관리의 목적은 돈을 가장 많이 남기는데 있지 않다. 불안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데 있다. 오늘 무엇을 할지, 내년에 어떤 계획을 세울지, 시장뉴스와 상관없이 결정할 수 있을 때 은퇴는 비로소 삶이된다. 자산은 그 삶을 뒷받침하는 수단이어야지, 매일 확인해야하는 걱정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은퇴는 이미 시작되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높은 수익률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다.
문의 (703)200-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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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김 Solomon Financial Solution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