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주로 향한 두 화가의 여정’

2026-02-26 (목) 03:01:59 도정숙 (서양화가, 게이더스버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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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 Meet The Sun’ Etel Adnan, Seundja Rhee 2인전

화이트 큐브 서울은 2026년 첫 전시로 레바논 출신 작가 에텔 아드난(1925~2021)과 재불 1세대 추상화가 이성자(1918~2009)의 2인전을 진행하고 있다. 에텔 아드난의 작품은 한국에서 처음 소개되는 자리다. 전시 제목은 아드난이 1968년 발표한 시에서 가져왔다.

인류 최초 우주비행사의 죽음을 기리는 애가인데, 이는 오랜 시간 우주적 세계관을 회화로 확장해온 이성자의 작업과도 긴밀히 연결된다. 이번 전시는 회화, 태피스트리, 판화를 중심으로 이주와 망명, 단절의 경험 속에서 형성된 두 작가의 예술 언어를 하나의 연결고리로 엮는다.

아드난은 태양과 달, 타말파이스 산의 실루엣을 반복적으로 호출하며 빛과 풍경을 색면으로 응축해왔다. 이성자는 지구와 행성계를 연상시키는 기하학적 구조를 통해 대지에서 우주로 확장되는 질서를 구축했다. 우주는 두 사람의 회화에서 중요한 키워드다.


화이트 큐브의 글로벌 아트 디렉터 수잔 메이는 “에텔 아드난은 10년 넘게 화이트 큐브와 함께해 온 작가로 이성자의 작업과 삶이 놀라울 만큼 잘 어울린다. 두 작가는 작품뿐 아니라 삶의 궤적에서도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여러 면에서 닮았다. 프랑스 파리 미술 무대에서 활동한 이방인이라는 점, 최종 추상 작업으로 귀착했다는 점, 철학적 사유의 결과 우주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이다.

아드난은 소르본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이후 캘리포니아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미 서부의 빛과 풍경을 색채와 면으로 표현하며 화가로서의 인생을 본격적으로 나아갔다.

1970년대 초 레바논으로 돌아가 예술, 문학 활동을 이어갔지만 레바논 내전으로 인해 파리로 망명했다. 그의 그림은 2012년 87세 때 독일 카셀 도큐멘타에 출품하면서 주목받았다. 이후 휘트니 비엔날레, 구겐하임 미술관 등에서 전시했다.

이성자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 유학을 한 신여성이다. 결혼 후 남편의 외도로 이혼하고 1951년 프랑스로 건너갔다. 파리에서 남성 중심의 추상 미술계 속에서 자신만의 추상 미술 언어를 모색했다. 베를 짜듯 켜켜이 붓질을 쌓고 그렇게 해서 중첩된 색면을 통해 고향의 기억과 모성의 감각을 응축시켰다. 1965년, 15년 만에 한국에서 가진 첫 귀국전은 대성공이었다. 이후 해방감을 느끼듯 작품에 우주적 모티브를 반복하며 우주 시대를 열어갔다.

이들은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사유의 전개 과정에서 주요 모티프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점 또한 유사하다. 이처럼 추상의 어법을 빌려 기억과 풍경, 나아가 형이상학적 세계를 구축한 이들의 시도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한 예술적 영감으로 공명한다.

화이트 큐브 서울은 2023년 개관했다. 영국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갤러리 화이트 큐브의 아시아 두 번째 전시 공간이다. 런던, 뉴욕, 파리, 홍콩, 웨스트 팜비치 등을 잇는 국제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해외 작가와 한국 작가의 작업을 하나의 장으로 병치하는 전시 전략을 지속해오고 있다.
디렉터 수잔은 “전 세계적으로 우울한 소식이 많지만,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 우리에겐 낙관이 필요하다”며 “어두운 시대를 견뎌낸 두 여성의 밝은 그림을 만나보길 바란다”고 덧붙인다. 지난 1월 26일 오픈한 이 전시는 3월 7일에 끝난다.

<도정숙 (서양화가, 게이더스버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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