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춘추] 소확행

2026-02-20 (금) 12:00:00 유경재 나성북부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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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함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았다. 제목은 왕과 사는 남자이다. 이 영화는 숙부에 의해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 생활을 하게 된 단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버지 문종이 제위 2년만에 급서를 하면서 단종은 12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된다. 어린 조카가 왕위에 오르게 되자 숙부였던 수양대군은 왕권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조카를 압박하였고, 결국 계유정난을 일으켜 단종을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스스로 왕이 된다.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은 단종을 유배를 보내게 되고 유배지에서 단종의 삶을 다룬 영화가 왕과 사는 남자이다.

역사속에서 단종의 유배생활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왕위에서 내려온 단종에 대한 역사 기록은 “ 노산군이 해를 입었을 때 아무도 거두어 돌보지 않았는데, 그 고을 아전 엄홍도가 곧바로 가서 곡을 하고 스스로 관곽을 준비해 염하여 장사를 치렀으니, 지금의 노묘가 바로 그 묘입니다 “-조선 왕조실록 현종실록 제 16권- 뿐이다. 이 한 줄의 기록을 가지고 감독은 상상력을 발휘해서 단종의 유배지 생활을 영화로 담아내고 있다.

영화 초반 단종은 숙부 수양대군에서 무력하게 왕위를 빼앗기고 삶의 의지조자 없는 인물로 묘사된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서는 다시 한번 왕위에 오르고자 하는 삶의 의지가 강력한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삶의 의지가 없었던 단종이 왕권에 다시 오르고자 하는 강력한 삶의 의지를 갖게 된 이유는 유배지였던 청령포 마을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의 삶을 공유하면서부터 이다.


왕의 신분으로는 결코 알 수도, 경험할 수도 없는 서민들의 소소한 일상의 기쁨과 대단할 것 없는 그들의 일상을 보게 되면서 단종은 새로운 삶의 의지를 품게 된다. 이 영화의 매력은 서민들의 소소한 일상과 그 속에 담겨진 작은 기쁨과 행복의 가치를 드러낸데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이 영화가 예매율 1위로 흥행하고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일상의 작은 행복의 힘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소확행 이라는 단어가 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등장한 단어이다. 1970-80년대 일본 버블 경제가 붕괴하고 일본 경기가 침체로 들어서면서 힘들게 지낸 경험을 토대로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심리를 잘 담아낸 책이다. 소확행은 ‘막 구운 따뜻한 빵을 손으로 뜯어 먹는 것, 오후의 햇빛이 나뭇잎 그림자를 그리는 걸 바라보며 브람스의 실내악을 듣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과 같이 일상의 소소한 일들 속에 담긴 기쁨과 행복을 찾는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진정한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점차 알게 된다. 진정한 행복은 커다란 성공이나 업적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 속에 있는 기쁨들을 볼 수 있을 때 누리게 된다. 기독교 신앙도 마찬가지다. 올해 우리 교회 한해 표어를 ‘일상이 신앙의 터가 되게 하라’로 정했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도 엄청난 기적을 체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소소한 일상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내세 울 것이 없는 일상일 수 있지만, 그 일상에 담긴 소소한 기쁨과 행복 그리고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는 것은 단종과 같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겨 더 이상 삶의 의지조차 없는 사람에게도 다시 인생은 살만한 것임을 알게 해주는 힘이 된다.

<유경재 나성북부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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