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오년 붉은 말 해, 정월 초하루다. 새해의 낯섦,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설날이다. 한 해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며 조상과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한국의 전통 명절이다. 설빔을 차려입고 조상께 차례를 올린 뒤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며 덕담을 들었던 때가 어제 일처럼 눈에 선하다.
2026년 1월 1일에 새해 인사를 주고받은 지 한 달 반이 지났는데 새삼스럽게 또 새해 타령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반세기를 미국에서 살아왔는데도 설날은 생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것은 어렸을 적 설날에 대한 행복했던 추억 때문 만은 아닐것이다. 풍족하지만‘불안한 미래’를 사는 현재의 삶보다, 춥고 가난했지만 가슴이 훈훈하고 풍요로웠던 그 시절의 설날이 그립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자랐던 마을은 대부분이 파평 윤씨로 사십여 가구가 혈연처럼 살았다. 그중에 연세가 많으신 우리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는 동네 어른으로서 동네의 대소사를 주관하셨다. 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동네의 어렵게 사는 분들에게 설차레 음식을 준비하도록 쌀과 땔감을 나누어 주었다. 집에서 일하는 일군 아저씨와 부엌일을 돕는 아주머니에게도 새 옷과 신발을 사주고 쌀을 가지고 자기 집에가서 설을 쇠고 오게 하셨다. 우리 6형제도 키가 자라고 발이 커진 만큼 어머니는 솜씨를 발휘해서 새옷을 지어주시고, 새 신발도 사주었다. 두살 아래인 내 동생은 늘 내 옷만 물려 입다가 일 년에 딱 한 번 설날에만 새 옷을 입을 수 있기에 이날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지금도 말하곤 한다.
설날 아침이면 차례상을 물리자마자 어머니는 동네 세배꾼들 모실 준비로 하루 종일 바빴다. 사기그릇에 손이 따닥따닥 붙을 정도로 추운 정지에서 어머니는 떡국과 술상을 차렸다. 상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는 동네 청년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온 동네 사람의 세배를 받으며 처녀와 총각에게는“ 올해는 꼭 시집,장가를 가야지.”하고 신혼부부에게는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아라.” 농사짓는 평범한 가장에게는 “올 한 해도 풍작을 하게나.” 등 사랑을 담아 덕담해 주었다. 그 덕담은 마치 신탁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환하게 밝혔다. 떡국과 삼색전, 식혜, 등으로 차려준 설상을 배부르게 먹고 싱글벙글 웃으며 대문을 나서는 이웃들의 모습은 지금도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언어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헬레나 노르베리-호지(Helena Norberg-Hodge)가 쓴 (오래된 미래) 책에서‘진정한 풍요는 물질적 소유가 아닌 공동체 안에서의 협력과 소속감,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행복을 찾는 삶이다.’라고했다. 돌이켜보면 우리 마을 사람들은 비록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한 공동체로서 서로 돕고 배려하며 살았다. 모든 것이 편리해지고 풍족한 지금, 우리는 과연 이전에 풍족하지 못했던 때보다 더 행복해졌을까?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에 뒤처질까 조급해하는 시대에 살면서 공동체 안에서 협력과 소속감, 조화를 이루는 대신 존재감 상실을 경험하며 더 불안한 미래로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새해는 언제나 희망을 품고 시작된다. 행복한 미래를 여는 새해, 이웃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여기고,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었던 옛적 설날 풍습으로 돌아갈 수 없을까? 수천 년 이어온 설의 전통적인 삶으로 되돌아간다면 , 아니 창조주가 지었던 에덴동산의 조화로운 삶으로 되돌아간다면 행복한 새해로 거듭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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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