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거꾸로 추락’
▶ 코치진 만류에도 2차 시기 출전 도전
▶ 3차서 유일 90점대로 1위 대반전

13일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스키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90.25점을 획득해 금메달을 획득한 최가온이 금메달을 목에 건 뒤 기뻐하고 있다. [리비뇨=연합뉴스]
눈발이 사납게 흩날린 13일 이탈리아 리비뇨 설원 위에서 대역전 드라마가 펼쳐졌다. 수차례 넘어지고도 다시 일어나 끝내 정상에 선 10대 소녀 최가온(18·세화여고). 그는 자신의 이름을 '한국 설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역사에 또렷이 새겼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집념으로 완성한 그의 연기는 불굴의 의지로 써 내려간 한 편의 서사이자, 한국 설원 스포츠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장면이었다.
최가온은 이날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90.25점을 기록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자신의 우상 클로이 김(미국·88점)을 넘어선 순간이었다. 한국 설상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이자,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 1호 금메달이다. 아울러 2008년 11월생인 최가온은 클로이 김이 2018 평창 대회 때 세운 이 종목 최연소(17세 10개월) 올림픽 금메달 기록도 '17세 3개월'로 갈아치웠다.
하지만 금빛 순간은 결코 순탄하게 찾아오지 않았다. 1차 시기에 고난도 기술인 ‘캡텐(스위치 스탠스로 공중 세 바퀴 회전)'을 시도하다 하프파이프 상단에 보드가 걸리며 크게 넘어졌다. 머리부터 떨어지는 아찔한 장면에 관중석도 숨을 죽였다. 의료진이 급히 달려왔지만 그는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가까스로 몸을 추스른 뒤 슬로프를 내려왔지만, 점수는 10점, 순위는 12명 중 9위였다.
2차 시기를 앞두고 전광판에는 ‘출전하지 않음(DNS)'이라는 표시가 떴다. 몸 상태를 우려한 코치진의 만류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가온은 고개를 저었다. “끝까지 해보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다시 출발선에 섰다. “7살 때부터 꿈꿔온 올림픽을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다시 넘어지더라도 끝까지 해보자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2차 시기는 사실상 숨을 고르는 시간이었다. 완벽한 연기 대신, 몸 상태를 점검하며 리듬을 되찾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3차 시기. 모두가 ‘쉽지 않겠다'고 기대를 놓은 순간, 대반전이 일어났다. 최가온은 무리한 연기 대신 900도와 720도 회전을 안정적으로 연결하는 전략을 택했다. 출전 선수 중 유일하게 90점을 넘었고, 순위표 맨 위에 이름을 올렸다.
최가온은 경기 후 “(1차 시기에) 너무 세게 넘어져 어디 하나 부러진 줄 알았다"며 “못 일어날 줄 알았는데, 순간 힘이 돌아오면서 일어나졌다"고 털어놨다. 이어 “한 번 제대로 넘어지고 나니 오히려 두려움보단 ‘아픈 게 빨리 나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과 앞으로 펼칠 기술 생각밖에 안 들었다"며 웃었다.
7세 때 아버지를 따라 스노보드에 입문한 최가온은 떡잎부터 달랐다. 2023년 1월, 만 14세 3개월의 나이로 미국 X게임 하프파이프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고, 같은 해 콜로라도 월드컵에서 한국 여자 선수 최초로 금메달을 따냈다.
그러나 이후 시련이 시작됐다. 2024년 스위스 락스 월드컵 중 허리 골절 부상을 입었다. 현지에서 1차 수술을 받은 뒤 귀국해 재수술까지 감내해야 했다. 그는 대회 전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보드를 계속 타야 할지 고민할 만큼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1년 가까운 재활 끝에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다시 보드 위에 서는 것. “보드를 타야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하체와 엉덩이 등 코어 근력을 집중적으로 다지며 몸과 마음을 다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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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김진주·박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