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은 지금] 고립을 넘어… 함께, 거리로

2026-02-11 (수) 12:00:00 김동찬 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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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삶은 늘 낯선 환경 속에서의 외로운 싸움이다. 언어의 벽, 제도의 장벽, 보이지 않는 편견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여기에 공권력에 의한 강경한 반이민 정책, 멈추지 않는 인플레이션과 경제적 불확실성이 더해지며, 많은 이민자들에게 미래는 점점 더 어둡게 느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경계해야 할 진정한 적은 외부에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 안에 스며드는 고립감이다.

고립은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우리를 움츠리게 만든다. “나 혼자다”라는 생각이 마음속을 가득 채울 때, 공동체의 힘은 사라진다. 경제적 불안, 이민 규제 강화 소식이 연이어 들려올수록 사람들은 더 조용해지고, 더 집 안으로 숨어들기 쉽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를 만나고 손을 잡는 순간, 그 불안은 희망으로 바뀐다. 함께할 때 비로소 두려움은 힘으로, 외로움은 연대로 변한다.

사실 우리 조상들은 오래전부터 이 진실을 알고 있었다. 농경사회였던 옛 마을들은 정월 대보름이면 온 마을이 함께 모여 동제와 달맞이, 지신밟기와 같은 세시풍속을 치르며 한 해의 안녕과 풍년을 빌었다.


제사를 지내고, 음식을 나누고, 줄다리기와 놀이를 즐기던 그 자리는 마을 사람들이 “우리는 하나의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축제의 장이었다. 축제는 단지 흥겨운 놀이가 아니라, 위기와 불안을 이겨내기 위한 공동체의 오래된 지혜였다.

2026년 2월17일은 음력 설날이다. 이번 음력설 역시 그런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설은 한 해의 첫머리를 여는 날이자, 가족과 마을이 서로 안부를 확인하며 결속을 다지는 날이었다.

지금 미국 사회에서 한인 이민자가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반이민 정서의 확산과 단속 강화, 집값과 생활비 급등, 경기 둔화의 그림자가 우리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올해만큼은 집 안에서의 조용한 명절을 넘어, 거리로 나와 우리의 존재와 연대를 확인하는 커뮤니티 축제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음력설 하루만으로는 부족하다. 단오, 추석, 대보름, 한가위, 그리고 현대적 의미를 더한 한인의 날 등 다양한 명절과 기념일을 계기로, 한 해 내내 이어지는 연중 축제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계절마다, 절기마다, 우리가 함께 모여 걷고, 먹고, 노래하는 자리를 꾸준히 만들어 갈 때,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공동체의 뿌리가 자라난다.

한인회, 비영리 기관들, 경제인 단체들, 종교기관 모두 담장을 허물고 손을 잡을 때다. 교파와 이념, 세대와 지역을 넘어 하나로 나설 때, 우리의 결속력은 더욱 단단해진다. 사물놀이 장단에 맞춰 행진하는 퍼레이드의 흥겨운 발걸음 속에서, 우리는 “함께”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한데 모여 행진하는 그 자리에서, 각자는 분명히 깨닫게 된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이 위기를 견딜 공동체가 내 곁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답은 분명하다. 문화로 말하고, 축제로 소통하자. 화려한 한복의 색, 풍물의 울림, 따뜻한 떡국 한 그릇과 송편 한 입이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이 사회 속에서 우리가 단지 보호받아야 할 약자가 아니라, 이 나라의 문화를 더 풍요롭게 만드는 주체임을 보여주는 가장 평화롭고 세련된 방식이다.

서로의 손을 잡고, 함께 웃고, 함께 노래하면서 공동체의 불빛을 더 밝게 지키는 일이다. 축제는 현실을 잊기 위한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견딜 힘을 다시 모으기 위한 약속이다.

이번 음력설부터 큰 축제를 열어야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여러 축제의 흐름 속에서, 미주 한인 사회가 고립을 거부하고 결속으로 위기에 맞서는 길을 열어가야 한다. 조상들이 절기마다 마을의 축제를 열어 공동체의 안녕을 다졌듯이, 오늘 우리는 이 땅의 거리에서 ‘미주 한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나야 한다. 우리가 함께일 때, 그 어떤 거친 바람도, 경제적 불안의 어두운 그림자도, 우리의 미래를 꺾을 수는 없을 것이다.

<김동찬 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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