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님은 참 낭만적이십니다! 평소 엉뚱하다거나 비현실적이란 말은 들었어도 낭만적이란 말은 처음 들어 보았다. 오랜만에 가는 고향, 부산이었다. 남동생이 마중 나와 오빠 집으로 향하려던 참이었다. 혹시 가는 길과 그리 멀지 않으면, 해운대 바다에 잠시 들렀다 가면 좋겠다고 하니 남동생이 한 말이다. 낭만이란 참 매력적인 단어다. 멋있다는 뜻으로, 또 인간적이란 말과도 통하는 것 같다. 오래전 들은 그 말이 갑자기 떠오르는 것은, 낭만이 아쉽고 그리운 탓일까?
나날이 물질에 더 가치를 두고 바빠진 세상에서 낭만을 찾는 일이 뒷걸음질 치는 일인지는 모르겠다. 실용성을 최우위에 두니 낭만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 예술과 감성이 빛나던 과거의 낭만주의로 돌아가자는 건 아니다. 머지않아 인간 감정까지도 학습시키려는 범용 인공 지능 (AGI)에게도 가능한 일일까? 기술적으로 그 패턴을 묘사나 흉내는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때론 비효율적이고, 이익에 반하는 선택을 하기에 낭만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취향이지 싶다.
나 자신이 낭만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 옛날 바다를 보고 싶어 했던 내 마음은 젊은 날의 추억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 때문이었을 거다. 감상적인 것이 낭만의 일부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전부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낭만은 인간에 대한 사랑, 이해, 가치에 대한 자신의 신념이 함께 한다고 본다. 인기 있었던 한국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가 같은 맥락일 것이다. 살아가면서 아름다움이나 여유를 찾는 일, 느리거나 돌아가는 길, 또는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고집하는 일일 수도 있다. 그 선택이 낳은 마음이 머무르는 순간에 낭만이 함께할 것 같다.
한 친구가 떠오른다. 그녀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늘 틈새를 찾아 여유를 즐길 줄 안다. 주변에 있는 사람 중에서 제일 힘든 삶을 살아야 함에도 거기에 함몰되지 않았다. 빈곤 속에서도 수많은 세상을 보고 즐긴다. 또 바쁜 시간을 쪼개 남을 돕는 일도 하고 있다. 그녀와 함께한 잊지 못할 추억이 많다. 만원으로 하룻밤 숙소와 아침이 제공되는 내설악 영시암에서 바라본 밤하늘, 낙산사의 무료 점심 공양, 그 국수 맛을 잊지 못한다. 그날의 이야기와 정경들이 아직도 선명하다.
낭만은 생과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신념이 함께 있어야 가능한 것 같다. 거기에 유머 한 스푼이 더해진다면 우리의 삶은 더 풍요해질 거다. 인생을 한발 물러서서 재치 있는 농담도 곁들인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왜 해운대 바다를 먼저 가고 싶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득히 먼 수평선을 보며 평온함을 찾으려 했는지. 무섭게 몰아치던 파도도 결국에는 부서지고 잔잔해짐을 보며 위안받고 싶었는지. 아니면 그저 그리움을 그리워했는지. 나중에 알았지만, 가는 방향과 반대임에도 동생은 그 바다로 나를 데려가 주었다. 생뚱맞은 요구에 다음으로 미루자거나 시간 낭비라며 반대할 수도 있었다. 돌아가는 길임에도 배려해준 동생의 따뜻한 마음이 고맙다. 그러고 보니 동생이야말로 낭만인 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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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숙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