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 1일이면 로즈 퍼레이드는 패서디나에서 시작되며, 거리는 꽃과 음악으로 넘친다. 각 도시와 단체는 정해진 주제에 맞춰 꽃과 씨앗으로 꽃차를 장식하고 거리를 지난다. 올해는 비가 내렸다. 비를 맞으면서도 악대는 연주를 멈추지 않았고, 말을 탄 사람들은 여전히 당당하게 행진했다. 꽃차들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 텔레비전 화면 너머로 보던 그 퍼레이드 속 꽃차들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나도 참여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그 소망을 이루었다.
꽃차 장식은 퍼레이드 일주일 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주재료가 꽃인 만큼, 시들기 전에 모든 작업을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남편과 함께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우리가 장식한 꽃차는 라카냐다 플린트리지(La Ca?ada Flintridge)의 플로트, 고잉 넛츠(Goin‘ Nutz)였다. 이 꽃차는 2026년 패서디나 로즈 퍼레이드에서 참가 도시 가운데 가장 뛰어난 꽃차에 수여되는 시장상을 받았다.
시월에 웹사이트에서 신청하고, 십이월의 마지막 월요일에 현장에서 여러 작업을 맡았다. 처음 맡은 일은 ‘바이얼링(vialing)’이라 불리는, 장미꽃을 일정한 길이로 잘라 작은 유리병에 꽂는 작업이었다.
남편은 한 다즌씩 묶인 장미의 포장을 풀고, 작은 도구로 가시와 잎을 말끔히 제거해 내게 건넸다. 나는 그것을 같은 길이로 잘라 유리병에 담았다. 곧 나는 오렌지와 빨강, 노랑과 연둣빛 장미 속에서 파묻혔다. 작은 병 백여 개가 꽂힌 스티로폼 판을 다섯, 여섯 개쯤 채웠다. 그날, 남편은 평생 나에게 건넸던 것보다 더 많은 장미를 내 손에 쥐여 주었다. 그렇게 많은 꽃에 둘러싸인 시간은 처음이었고, 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다.
그다음으로 맡은 작업은 메인 플로트 앞쪽에 놓일 통통한 오리였다. 우리는 노란 국화꽃으로 오리를 채워 나갔다. 평소에는 하얀 글루를 쓰지만 비 소식이 있어, 더 묽지만 젖어도 오래 견디는 글루를 사용했다. 그러나 글루는 예상만큼 강력하지 않아, 꽃이 자꾸 떨어졌다. 손이 글루와 꽃잎으로 범벅이 될 때까지 씨름한 끝에, 마침내 난 활짝 핀 꽃 하나를 오리 궁둥이에 붙일 수 있었다. 내친김에 오른쪽 머리와 왼쪽 날개까지 손끝으로 하나씩 눌러 붙이며, 이 꽃들이 퍼레이드 날까지 버텨 주기를 속으로 빌었다.
퍼레이드 당일, 텔레비전 화면에서 오리가 당당히 지나갈 때, 내가 붙인 꽃들이 떨어지지는 않는지 나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다행히 오리는 온전했고, 국화꽃들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순간, 만족감에 혼자 씩 웃었다.
패사디나 로즈 퍼레이드 꽃차 장식은 오래 마음에 품어온 버킷 리스트였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손을 맞추고, 모르는 것은 묻고, 바뀐 사항은 서로 전하며 일했다. 모두가 자원봉사자였고, 우리같이 처음 경험하는 이들도 많았다. 손은 바빴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다른 사람들과 웃고 있는 남편도 즐거워 보였다. 흥겨운 하루였다.
말없이 장미를 건네고 국화꽃을 붙이던 시간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세상 사는 건 별것 아니라고. 삶은 생각보다 단순하다고.
<
이리나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