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단상] 꿀벌과의 인연
2026-01-16 (금) 12:00:00
전병두 서북미수필가협회 회원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어느 늦은 봄날이었다. 활짝 핀 민들레꽃 꽃잎을 만지기도 하고 물을 뿌리며 놀고 있었다. 갑자기 많은 벌떼가 달려들어 머리와 얼굴을 쏘았다. 기겁하며 물러섰지만 이미 늦었다. 눈 주변이 부어오르고 머리에 달라붙은 벌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 이후로 벌은 가장 무서움의 대상이었다. 산이나 들 꽃밭에서도 벌이 나타나면 물러서곤 했다.
그해 겨울 감기로 앓고 있을 때 어머니는 따끈한 꿀물을 마시게 했다. 따끔거리던 목이 한결 부드러워지는 듯했다. 자고 나니 감기 기운이 사라졌다.
뒤 뜰에 벌통을 두고 아카시아꿀을 채취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벌통 주변을 정리하기도 하고 벌들이 가까이 와도 피하지도 않았다. 멀찍이 서서 구경하는 나에게 친구는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그는 벌통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만지기도 했지만 벌들은 친구를 공격하지 않았다. 친구와 벌은 가까운 친구처럼 보였다.
이듬해 이른 봄에 친구는 벌 한 통을 주었다. 벌을 무서워하지 말라고도 했다. 얼굴을 면사포로 가리고 긴 장갑을 끼고 조심스럽게 벌통 뚜껑을 열고 속을 들여다보았다. 빽빽이 달라붙어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큰 공사를 맡아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들 같았다. 방들은 깨끗이 정돈되어 있고 아가방, 꿀방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집을 드나들면서 꽃가루를 채워넣기도 하고 물고 온 꿀을 방에 채우기도 했다. 아가 방에는 갓 나온 듯한 새끼 벌들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어릴 때 겪었던 벌에 대한 공포는 차츰 사라졌다. 아카시아꽃이 필 무렵에는 벌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바빠 보였다. 꽃가루를 양다리에 잔뜩 붙여 들어오기도 하고 어떤 벌은 잔뜩 머금은 꿀 무게로 벌집 문 앞에 털썩 주저앉기도 했다. 벌들의 활동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활발하게 집을 드나드는 벌을 보고 있으면 생명의 신비함이 몸으로 전달되는 것 같았다. 햇볕이 강한 여름에는 벌통 위에 판자를 얹어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겨울에는 스티로폼으로 벌집을 감싸주었다. 한 해 가을에는 벌집에 가득한 꿀을 채집기로 떠내었다. 8온스 작은 통에 나누어 담아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먼 거리에 있는 친구들에게는 작은 종이 상자에 넣어 우편으로 보내주었다. 벌과의 인연이 이웃 정으로 이어졌다. 벌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꿀벌은 고대 세계에서부터 인간과 깊은 인연을 맺은 존재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동물지’에서 벌의 사회구조를 자세하게 설명한 바 있다. 벌은 지혜, 질서, 공동체의 상징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성경에는 가나안 땅을 가리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다. 삼손은 친구들에게 한 수수께끼를 내었다.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것이 나왔느니라”. 친구들은 사흘 동안에도 이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다. 그것은 삼손이 사자의 몸에서 구한 꿀을 의미한 것이었다. 온갖 열매, 과일, 꽃들이 꿀벌과 함께 맺은 인연으로 세상은 더 풍요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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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두 서북미수필가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