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지나면서 하늘이 낮게 내려오고, 종종 비가 내린다. 빗방울이 맺힌 창문 너머로, 멀리 할리우드 사인에 푸르스름한 이내가 흐르고, 그리피스팍의 울창한 숲이 어둡게 젖어있다.
한해가 가고 다음 해가 오는 것이 시간의 연속인데도, 우리는 새 달력을 걸고 새롭게 맞이한다.
12월은 끝이 아니라 생의 방향을 다시 가늠하는 시기다. 성과를 계산하기보다 자신의 지난 행적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연말은 정리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스스로에게 새겨두어야 할 미해결의 질문들이 여운으로 남는다. 우리는 많은 가능성이 있는 시간의 오솔길을 건너고 있다. 갈라지기도 하고 만나기도 하는 시간의 그물을, 복잡다단한 시간의 미로를 지나고 있다.
“시간은 나를 이루는 본질이며 시간은 나를 휩쓰는 강이지만 내가 곧 강이다. 시간이 우리 밖에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슴에서 흐르고, 시간은 곧 우리 자신이다. 시간이 무서운 이유는 돌이킬 수없이 숙명적이기 때문이다.”.… 보르헤스의 ‘새로운 시간론’
2025년은 유난히 빠른 해였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유추보다 더 빨리 도착했고, 우리는 세상의 변화를 받아드리기 전에 기술의 환등기 안에서 그 결과에 뒤처지는 막막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과속으로 변화한 편리함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인간에 미치는 결과와 미래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불확실한 의문을 갖게 된다. 우리의 생활이 더 편리해졌지만, 과연 의심 없이 더 행복해질 것인가 묻게 된다.
행복은 지금 이 순간을 잘사는 능력일 것이다.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현재의 숨결이 편안해진다. 생의 의미를 따라 사는 삶은 행복을 단단히 만든다. 세상의 기준만이 아닌 자신의 내면이 기뻐하는 방향으로 걸을 때, 인생은 고요한 행복의 빛을 띤다. 행복한 삶은 먼저 자신과의 화해하는 삶일 것이다. 나의 결함과 한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마음은 고요해진다.
나는 내 삶을 원을 그리며 살아왔다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노래했다. 릴케는 “진정으로 사랑받는 사람은 늘 성장한다고 했다. 그는 점점 더 깊고, 더 풍요로워지며, 더 단순해진다.”고도 했다. 그 단순함 속에는 삶의 경험과 아픔이 녹아있을 것이다. 삶은 원처럼 반복되지만 점점 더 넓어지고 깊어지며, 미완성으로 남는다는 깨달음. 미완성으로 끝나도 그 자체가 삶의 멋이라는 메시지. 우리 인생도 마지막까지 완성되지 않은 채 남지만,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멋이 될 것이다. 끝내 다다르지 못할 마지막 원, 채워지지 않은 그것이 진정한 삶의 멋이 아닐까!
연말은 마침표의 시간이 아니라, 쉼표를 다시 배우는 계절이다. 더 나은 결론을 내리기보다, 더 정직한 질문 하나를 품고 다음 해로 건너가는 것, 어제의 무게가 어께에 남아있지만, 새해는 시간을 묻지 않고 새문을 연다. 다시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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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자 시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