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베네수엘라 석유 암투
2026-01-06 (화) 12:00:00
송용창 / 한국일보 논설위원
베네수엘라의 석유 생산량은 하루 85만여 배럴(2024년)로 세계 20위권이지만, 원유 매장량만 놓고 보면 약 3,000억 배럴로 세계 1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3일(현지시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전격적으로 축출한 배경에 잠재적 가치가 엄청난 이 자원을 둘러싼 암투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베네수엘라 전체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석유는 마두로 정권을 지탱해온 돈줄이었다. 2013년 집권 이후 경제 파탄과 초인플레이션 등으로 700여만 명이 나라를 떠나는 대규모 난민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정권이 유지될 수 있었던 건 마두로 휘하의 군부가 석유 이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셰브론 합작회사가 베네수엘라 석유 생산량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며 마두로 정부에 매년 32억 달러의 수입을 제공하는 것으로 추산된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 의회의 쿠바계 의원들은 마두로 정권의 돈줄을 막기 위해 셰브론 철수를 요구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셰브론이 빠지면 중국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을 우려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지난해 4월 셰브론의 사업 면허를 취소했는데 그의 우려대로 지난해 3분기 베네수엘라 석유의 80%가량이 중국으로 수출되는 등 중국의 영향력이 급격하게 커졌다. 중국 민간기업은 베네수엘라 내 2개의 유전 개발에도 착수했다.
■ 트럼프 대통령은 마두로 축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 석유 회사들의 베네수엘라 진출을 공언하면서 “미국은 외부 세력이 서반구에서 우리 국민을 약탈하고, 우리를 반구 안으로 밀어넣거나 밖으로 몰아내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을 겨냥했다. 미국이 뒷마당으로 여기는 베네수엘라 유전에 중국이 손길을 뻗쳐서는 안 된다는 노골적인 경고인 셈이다. 마약 밀매가 마두로 제거의 명분이었으나 실은 석유를 둘러싼 중국과의 패권 경쟁이 더 크게 작용한 게 아니냐는 시각이 나오는 이유다.
<송용창 / 한국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