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응급환자 골든타임 놓칠 일 없어요”… 한국 ‘의료 AI’ 50% 성장

2025-12-22 (월) 12:00:00 변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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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급실 실려온 환자 뇌 MRI, AI로 분석

▶ 혈전 아닌 혈관 문제 예측, 의사와 일치

“응급환자 골든타임 놓칠 일 없어요”… 한국 ‘의료 AI’ 50% 성장

뇌경색 진단 인공지능(AI·JBS-01K) 분석. [고려대 구로병원 제공]

지난달 28일 서울 구로구 고려대 구로병원 응급실에 김모(66)씨가 실려 왔다. 전날부터 오른쪽 팔다리를 제대로 움직일 수 없던 그는 의사소통에도 어려움을 보였다.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결과, 급성 뇌경색이었다. 뇌경색은 뇌혈관이 막혀 뇌 조직이 괴사하는 질환이다.

치료가 시급한 상황에서 인공지능(AI)이 나섰다. MRI를 분석한 AI는 즉각 김씨의 뇌가 손상된 정도(7.8mL)를 측정했다. AI는 심장에서 떨어져 나온 혈전(피떡)이 뇌혈관을 막았을 확률을 약 10%로 예측했다. 다른 원인으로 뇌혈관에 이상이 생겼을 가능성이 약 90%였다.

김치경 고려대 구로병원 신경과 교수는 “죽은 뇌 조직의 크기와 발병 원인에 따라 막힌 혈관을 뚫는 혈관 재개통술 여부와 처방 약물이 달라진다”며 “치료를 한시라도 빨리 시작해야 하는 응급 상황에서 AI의 즉각적인 진단은 치료 결정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혈전 아닌 혈관 문제라는 AI의 예측은 의사 판단과 동일했고, 김씨는 무사히 회복 중이다.

의료진을 대체할 거란 기대를 모았던 초기 의료용 AI인 ‘왓슨 포 온콜로지’(이하 왓슨)의 퇴장 이후 주춤했던 의료 AI가 병원 현장에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진단 보조’ 역할 정도는 거뜬히 해내는 AI의 활용도를 더 끌어올리면 가장 민감한 문제인 ‘책임 소재’를 건드려야 한다.

17일 시장조사기관 마켓츠앤마켓츠에 따르면 2023년 3억7,700만 달러였던 한국 의료 AI 시장은 2030년 66억7,200만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연평균 성장률은 50.8%. 같은 기간 세계 평균(41.8%)과 아시아 평균(47.9%)을 모두 웃돈다.

현장에선 이미 “의료 AI가 없어서는 안 될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정진 이대목동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평가가 나온다. 왓슨의 실패가 반복될 가능성은 낮다는 얘기다. IBM이 개발한 왓슨은 도입 5년 만인 2021년 한국에서 퇴출됐다. 미국·유럽 환자 중심의 논문을 주로 학습한 탓이다.

이 같은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최근 의료 AI는 한국외 임상 데이터를 중심으로 정밀도를 높이고 있다. 의료 AI 업체 딥노이드의 현지훈 AI연구소장은 “정확도를 높이려고 흉부 엑스레이(X선) 영상과 해당 영상에 대한 의사 판독문을 함께 학습시킨다”고 말했다. 이렇게 만든 딥노이드의 의료 AI(M4CXR)는 흉부 엑스레이만으로 수초 안에 41가지 질병 여부를 탐지할 수 있다.

의료진의 임상 판단에도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3월 의료 AI 업체 루닛은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영상의학 전문의가 유방촬영 영상 분석 AI(루닛 인사이트 MMG)를 썼더니 유방암 발견율이 26% 증가(1,000명당 3.9명→4.9명)했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특히 의료진이 부족한 지역에서 의료 AI의 중요성은 날로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의료 AI를 대하는 병원 환경은 왓슨 때와 크게 달라졌지만, 기술 활용도를 높이는 데는 여전히 장벽이 높다.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다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임지연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미국의 AI 행정명령과 유럽연합(EU)의 AI법처럼 개발자와 배포자, 의료인, 의료기관이 공동 책임지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변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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