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에세이] 어른들의 레고로 불리는 집
2025-12-17 (수) 12:00:00
이현숙 수필문학가협회 이사장
익살과 풍자로 미국 문학의 심장을 찌른 작가, 마크 트웨인. 커네티컷 주 하트퍼드의 그의 집 앞에 섰을 때, 마법의 성을 발견한 아이처럼 숨이 멎는 듯했다.
이라는 현판 아래 붉은 벽돌 3층 빅토리아 양식 저택이 우뚝 서 있었다. 직사각형 본체에 육각형 탑, 부채꼴 공간, 팔각정, 반원형 방, 유리 온실까지 붙어 있어, 마치 “나를 찾아보라”고 속삭이는 장난감 같아 ‘어른들의 레고’라 불린다.
39세의 트웨인은 4만 달러를 들여 집을 지었다. 화려함보다 상상력과 실험 정신이 담긴 집이었다. 이곳에서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 등이 태어났다. 문고리를 잡는 순간, 탐과 허클베리 핀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설렘이 있었다.
현관을 열자 정교한 나무 난간과 티파니 디자인의 계단이 반겼다. 그는 스스로를 작가이자 발명가라 불렀는데, 실제로 집 곳곳에는 구리 배관 온수 시스템, 하인 호출 장치, 가정용 전화 같은 혁신적 장치가 설치돼 있었다.
오른쪽 응접실은 손님을 맞는 공간이었다. 안쪽 다이닝룸에서도 가족 식사 때 정장을 입었다. 벽난로 위 창문으로 겨울 풍경을 보는 낭만을 즐겼다. 서재 겸 거실은 집의 중심이었다. 벽면 가득한 책, 인도풍 벽난로, 스코틀랜드 조각 패널, 부인의 초상화와 여행 기념품이 어우러져 작은 세계 박물관 같았다.
문학의 거장이면서도 유쾌한 아버지였다. 온실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겨울에도 백합을 피워 아이들에게 정글과 무대가 되었고, 트웨인은 딸들과 『왕자와 거지』 연극을 꾸미며 직접 기사 역할을 맡았다. 햇살과 초록빛 화초, 분수대 물줄기 속 아이들의 웃음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2층 침실에는 그의 내면이 묻어 있었다. 베네치아 침대에 새겨진 천사 조각은 평온하지만, 어린 아들과 딸 수지를 떠나보낸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은 침대다. 사람의 80%가 거기서 죽는다”라며 농담했지만, 그 속엔 깊은 상실이 있었다. 옆방은 딸들의 홈스쿨링 공간으로, 작은 찻잔과 인형,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인형의 집이 따뜻한 기억을 전했다.
3층 서재는 성역이었다. 당구대, 원고가 흩어진 책상, 별을 보기 위해 창가로 돌린 자리, 빗소리를 듣기 위한 지붕 함석까지. 금요일이면 친구들과 당구를 치며 스카치와 담배 연기 속에서 유머와 상상력이 피어올랐다. 집을 나서며 포치에 걸린 가족 사진 속 행복이 눈앞에 겹쳐졌다.
옆 박물관에는 실패한 자동식자기, 브래지어 후크, 풀 없는 스크랩북 등 발명품이 전시돼 있었다. 동시에 노예제 폐지, 여성 참정권 지지, 중국 이민자 지원, 테슬라와의 실험 등 시대를 앞선 발자취도 기록돼 있었다. 실패와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는 달변가로 강연하며 빚을 갚았다.
중앙 홀에는 그의 흉상과 레고 모형 집이 놓였다. 트웨인은 “나는 미국인이 아니다. 내가 곧 미국이다”라고 말했고, 실제로 그의 삶과 집은 한 시대의 상상력과 문학의 무대였다. 그는 “핼리 혜성이 나타날 때 태어나, 돌아올 때 세상을 떠날 것”이라 예언했고, 농담처럼 흘린 말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해학 속 비극과 장난 속 통찰, 그것이 마크 트웨인의 문학이었다.
나는 천천히 걸으며, 나는 천천히 걸으며, 먼 시대의 목소리가 귓가에 스쳤다. 삶을 비틀어 웃게 하고, 웃음 속에서 다시 삶을 보게 하는 힘. 우리에게 필요한 문학이 아닐까.
<이현숙 수필문학가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