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정보영 심장내과 교수가 펄스장 절제술(PFA)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부정맥(심방세동) 치료의 패러다임이 ‘열’에서 ‘전기장’으로 바뀌고 있다. ‘펄스장 절제술’(PFA)이 도입되면서부터다. PFA는 허벅지 혈관을 통해 카테터(의료용 가느다란 관)를 심장까지 넣은 뒤, 고전압을 쏴 심장 근육 세포에만 미세한 구멍을 내는 식으로 심방세동을 치료한다. 심장 박동을 엉키게 하는 비정상적인 전기신호가 나오는 길목의 세포를 괴사시켜 나쁜 전기신호가 퍼지지 않도록 차단벽을 세우는 원리다.
주변 조직 손상을 최소화해 의료진 사이에서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이 기술은 도입 1년 만에 임상 현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은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베리펄스’ 시술 100례를 달성했다. 또 다른 PFA인 파라펄스까지 합하면 425례(지난달 26일 기준)에 달한다. 세브란스병원의 펄스장 절제술 도입과 시술을 주도한 정보영 심장내과 교수를 3일 병원에서 만났다.
-기존 치료법(고주파·냉동)과 비교할 때 PFA의 장점은 무엇입니까.
가장 큰 장점은 안전성 향상이에요. 기존 방식은 열이나 냉기로 조직을 태우거나 얼리는 원리여서, 드물게 식도 천공이나 주변 신경 손상 같은 합병증 우려가 있었습니다. 반면 PFA는 고전압 전기장을 이용해 심장 근육 세포에만 미세한 구멍을 내는 방식입니다. 심장 세포만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주변 장기 손상 위험이 낮아요. 시술 시간이 크게 줄어든 것도 환자에게 좋은 점입니다.
-전기로 구멍을 낸다는 원리가 생소합니다.세포는 평소 안쪽이 음전하(-), 바깥쪽이 양전하(+)를 띠며 전기적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에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강력한 전기장을 가하면 이 균형이 깨지면서 세포막에 미세한 구멍이 뚫려요. 그러면 세포가 안팎의 삼투압을 조절하지 못해 결국 터지거나 괴사하게 됩니다. 이 원리를 치료에 이용하는 거죠. 심방세동 환자는 심장 내 특정 부위(주로 폐정맥 주변)에서 비정상적인 전기신호가 튀어나와 심장 박동을 엉망으로 만들어요. 그래서 이상 신호가 나오는 길목의 심장 세포를 괴사시켜 비정상적인 전기신호가 넘어가지 못하게 일종의 차단벽을 세우는 겁니다.
-게임 체인저라고 불리는 이유가 궁금합니다.시술 결과의 표준화 때문이에요. 고주파 시술은 의사의 손기술이나 숙련도에 따라 시술 시간과 성공률 편차가 컸습니다. 반면 펄스장 절제술은 시술자에 관계없이 비교적 일정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변화입니다. 의사의 숙련도를 기술이 보완해 주는 셈이라, 환자 입장에선 어떤 의사를 만나도 균일하고 안전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죠.
-파라펄스와 베리펄스는 어떻게 다릅니까.가장 큰 차이는 카테터의 구조와 3차원(3D) 매핑 연동성이에요. 파라펄스는 꽃 모양의 카테터를 사용해 조작이 간편하고, 세계적으로 축적된 데이터가 풍부합니다. 베리펄스는 원형 카테터를 쓰는데, 3D 매핑 시스템과 결합돼 심장 내부를 정교하게 시각화할 수 있다는 게 강점입니다.
도입 초기에는 병변이 복잡한 만성 심방세동 환자에게 3D 시각화가 뛰어난 베리펄스를 우선 적용했어요. 3D 매핑은 심장 내부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치료한 부위를 색깔로 표시해주기 때문에 꼼꼼하게 ‘전기 차단벽’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다만 최근에는 파라펄스도 3D 장비와 연동되기 시작해 기능 격차는 줄어드는 추세예요.
-고령이나 기저질환 환자에게도 안전합니까.시술 시간이 짧고 주변 장기 손상 위험이 낮아 고령 환자에게도 비교적 안전하게 적용할 수 있어요. 미국에서는 80% 이상의 환자가 시술 당일 퇴원합니다. 다만 유의할 점은 마취입니다. 통증 조절을 위해 환자를 깊은 수면(진정 마취) 상태로 유도해야 하므로, 전신 상태가 취약하거나 호흡기 기능이 나쁜 초고령 환자는 마취 자체가 부담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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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