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심리 1년 넘게 못잡기도 구조적 문제와 인력난 겹쳐
▶ “합법 체류 시작했어도 신분 끊기면 위험” 경고
40대 김모씨는 15년 전 관광비자로 LA에 입국했다가 한 사설 교육기관을 통해 학생비자로 신분 변경을 시도했다. 이후 미국 생활을 안정시키며 직장도 잡고 결혼을 앞둔 예비 배우자까지 생겼지만, 최근 회사가 영주권 스폰서를 제안하자 과거 다닌 학교의 기록이 문제로 드러나 신청이 거부됐다. 신분 불안정에 추방 위험까지 겹친 그는 법적 대응에 나섰으나, 본심리 일정조차 1년 넘게 잡히지 않는 상황이다.
최근 이민법원의 적체가 심각해지면서 한인사회에도 직접적인 영향이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민정책연구소(MPI)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중순 연방 이민법원의 계류 사건은 약 380만 건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보고서는 이민법원이 ‘기능 장애의 악순환’에 빠져 이민제도의 핵심 기능이 흔들리고 있다며, 행정·입법 전반에 걸친 개편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성환 이민법 변호사는 “한인 케이스의 경우 처음부터 불법 체류자였던 케이스보다, 합법적으로 미국 생활을 시작했지만 중간에 신분 문제가 생긴 경우가 많은데, 이런 사건들 역시 적체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본심리 날짜가 잡히지 않아 절차가 멈춰 있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며 “우선순위가 낮다고 판단되는 사건일수록 더 뒤로 밀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MPI에 따르면 이민법원 적체는 최근 수년간 기록적인 속도로 증가했다. 2021년 167만 건이던 계류 사건은 올해 7월 378만 건 이상으로 두 배 넘게 늘었다. 구조적 문제에 부담이 누적되면서 사실상 법원이 마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적체 원인은 복합적으로 분석됐다. 바이든 정부 시절부터 국경 지역 이민자 유입과 망명 신청이 급증하며 적체가 악화된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는 망명 제한 정책과 보호 조치 축소를 추진하는 동시에 대규모 추방 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신규 추방 사건이 폭증해 법원의 부담이 오히려 더 커졌고, 신속추방 정책은 잇단 소송으로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인력 부족도 주요 요인이다. 올해 7월 제정된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으로 예산이 확대돼 판사 증원이 가능해졌지만 정원은 800명으로 제한됐다. 올해 6월 기준 판사는 685명으로,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적체를 10년 내 해소하려면 1,300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분석한다. 게다가 올해 1월 이후 139명 이상이 해고·전보·조기퇴직으로 떠나는 등 인력 유출까지 이어지고 있다.
시스템 자체의 비효율도 적체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민심사행정국(EOIR)은 여전히 종이 기반 행정에 의존해 통지 지연, 주소 오류, 결석 판결 증가 등이 발생하고 있다.
결석 결정은 이후 재개 신청으로 이어져 다시 적체를 키우는 악순환을 만든다. 더불어 2024년 기준 전체 사건의 68%가 변호사 없이 진행돼 절차 오류, 심리 지연, 재개 신청 증가 등 추가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2025년 들어 법원 내 법률지원 프로그램이 중단된 것 역시 부담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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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