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도미 후 워싱턴 DC근처 북버지니아에 정착, 40여년을 살아왔던 여러 이유들 중 큰 하나는 태어나 처음 30년 살았던 서울의 사시사철 기온과 거의 비슷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기후변화로 좀 달라졌긴 하지만 말이다. 혹독했던 (아마도 정신적 요소도 곁들여져 있었겠지만) 겨울 다음엔 어김없이 마음을 설레게 해주는 연초록색의 봄날이 오면 특히 여인네들의 마음을 안절부절 못하게도 만든다는 봄바람이 소리 없이 곱게 다가온다. 그러더니 어느덧 어름장수들, 빙수가게들이 싱글벙글하는 무더위에 모기향을 잔뜩 피어놓고 모기장 안으로 다투듯 기어들어가 안 오는 잠을 초저녁부터 자려고 무던히 애들을 쓰지 아니하였던가! 비지땀 흘리며 뙤약볕 아래 열심히 농사짓던 농촌의 남정네들(여인네들도 물론 포함)의 노력의 보람들이 무르익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가을이 슬며시 다가온다. 아! 가을인가 봐를 성악가가 아니더라도 저절로 흥얼거리게 되는 참으로 황금의 계절이 아니였나.
이때 파란 눈의 중노년기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펄벅 여사)가 하루 종일 일하고 자신은 지게에 잔뜩 짐을 지고 빈 달구지를 끌고 가는 송아지를 인도하며 가는 어느 농부의 고운 마음씨, 배려함의 참모습을 읽고 감탄하여, 오랜 세월 살았던 중국보다도 오히려 대륙에 붙어있는 자그마한 나라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 대한민국(大韓民國)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우리들의 심금을 영원히 울리고 있다.
봄날이 놋젓가락도 녹인다는 여인들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남정네들 몫이라 한다. 철판도 뚫는다는, 하여 지나면 어김없이 삼라만상(森羅萬象)의 변화로 흰색으로 상징되는 눈과 함께 White X-mas 노래들이 유성기판과 라디오를 통해 길 가던 사람들의 귀를 쫑긋하게 만든다. 아, 이게 사람 사는 사계(四季)의 모습이렸다.
꽤, 오래전부터 한 지인과 음악을 통해 가을을 함께 즐기고 있다. 저음의 구수한 냇 킹 콜(Nak King Cole)의 ‘Autumn Leaves’도 좋아하지만 이브 몽땅(Yves Montand)의 ‘가을 잎(original French title ’Les Feuilles Mortes‘)’ 또한 좋아한다.
몽상에 젖어 흥얼거리는 듯한 이브 몽땅의 노래는 정확히 가사 내용도 모르면서 그저 좋아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을이 되면 첫번째 선곡(選曲)이 바로 두말하면 잔소리다.
우리들 인간들은 풍파 없는 평온하기만 한 유토피아(Utopia), 鄕(향, 세상)을 늘 꿈꾸며 살지만 그래도 굴곡이 있고, 풍파가 있는, 사계가 있는 현 세상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 상하(常夏)의 나라, 일 년 내내 따뜻하기만 지역보다 단풍이 있는 가을과 눈보라치는 겨울도 함께하는, 봄과 여름이 곁들어 있는 고장, 아, 나의 제2 고향 동부 워싱턴 DC, 북버지니아가 그리워지는 계절이 여기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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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길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