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8년 11월 카리브 해의 윈드워드 해협에서 프랑스 군함과 마주친 해적선 ‘레인저’(Ranger)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공격과 후퇴를 놓고 의견이 갈린 것이다. 투표에 부친 결과 압도적인 차이(76 대 15)로 공격해야 했지만, 선장 찰스 베인은 체급에서 차이가 나는 군함과 굳이 싸울 필요가 없다며 계속 후퇴를 고집했다. 물러난 해적들은 선장을 겁쟁이라 놀리며 찰스 베인을 쫓아내고, 공격하자고 부추긴 존 래컴을 선장으로 추대했다.
래컴은 정말 프랑스 군함을 공격할 생각이었을까? 큰 바다에서 대형 무역선을 상대로 한 탕을 노리는 과감한 해적과 달리, 그는 기동력 좋은 작은 해적선으로 가까운 바다에서 혼자 다니는 작은 어선이나 무역선만 노리는 좀도둑 같은 해적질로 승률을 높였다. 자랑할만한 무용담이 없다. 탁월한 말발로 동료 해적을 선동해서 반란을 일으켜 선장 자리를 꿰차고, 유명한 해적인 것처럼 이름을 남겼을 뿐이다. 겉멋만 번지르르한 해적일 터다.
부를 과시하기 위해 벨벳을 즐겨 두른 여느 해적 선장과 달리, 래컴은 밝고 화려한 옥양목(Calico) 바지를 즐겨 입었다. 그래서 별명이 ‘캘리코 잭’(Calico Jack)이다. 패션 감각에 디자인 감각까지 뛰어났을까? 해골 아래 칼 두 자루를 엇갈리게 배치한 해적기 ‘졸리로저’(Jolly Roger)도 그의 작품이다. 더 놀라운 것은 여자 해적을 둘씩이나 거느리고 거드름을 피운 것이다. 앤 보니와 메리 리드를 해적선에 태우고 해적질 하는 그는 해적 세계의 최고 멋쟁이였다.
흥청망청한 그의 삶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1720년 노략질을 마치고 자메이카의 한 항구에 정박했을 때, 영국의 해적사냥군들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술과 향락에 취한 ‘캘리코 잭’과 해적들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붙잡혔다. 여자 해적 둘, 앤 보니와 메리 리드만이 끝까지 칼을 들고 저항했을 뿐이다. ‘캘리코 잭’이 교수대로 끌려갈 때 앤 보니가 외쳤다. “사내답게 싸웠다면, 개처럼 목 매달리진 않았을 거야”(If you had fought like a Man, you need not have been hang‘d like a Dog). 향년 37세.
‘캘리코 잭’의 낭만적인 해적질은 ‘위워크’(WeWork)의 애덤 노이먼의 과시적인 경영과 닮았다. 노이먼도 ‘캘리코 잭’처럼 청산유수(靑山流水) 달변이었다. 그는 ‘위’(We)라는 이상적인 단어를 앞세워, 공유오피스를 ‘세상을 바꾸는 커뮤니티’로 포장했다. 달콤한 비전과 열정적인 발표에 반한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같은 거물 투자자에게서 수십 억달러를 끌어 모았다. 화려한 언변과 강렬한 카리스마로 듣는 사람을 혹하게 만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성과가 없었다. ‘위워크’는 사업모델이 근본적으로 부실했다. 부동산 임대사업을 첨단 기술사업인 것처럼 포장했을 뿐이다. 엄청난 투자금을 끌어왔지만, 지속가능한 수익을 창출하지 못했다. 개인 전용기를 장만할 정도로 사치스러운 데다 부인을 끌어들여 방만하게 경영하고, 회사 자산을 개인적으로 유용하면서 2019년 결국 ‘위워크’에서 쫓겨났다. ‘캘리코 잭’의 몰락과 묘하게 겹치는 장면이다.
남은 것은 이미지다. ‘캘리코 잭’의 ‘졸리로저’는 검은 바탕 한 가운데 허연 해골과 해적 칼 두 자루를 X자로 걸어 놓았다. 공포를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가장 대중적인 해적기로 꼽힌다. 노이먼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생각지도 못했던, ‘위’(We)를 기업 브랜드로 내세워 단순한 사무공간을 공동체의 상징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위워크’(WeWork), ‘위리브’(WeLive), ‘위그로’(WeGrow) 같은 확장적인 브랜드로 공유경제의 깃발을 먼저 꽂은 것이다.
‘캘리코 잭’은 해적의 역사에 가장 상징적인 해적기를 펄럭였고, 애덤 노이먼은 공유경제의 역사에 가장 강력한 브랜드를 찍었다. 그들은 왜 자신이 제시한 비전대로 살지 않았을까? 못했을까?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가 중요했을 뿐, 실천하려는 진정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와 허세가 본질이었을 뿐, 자신이 만든 신화의 무게를 스스로 감당할 역량이 부족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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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두영 한국과학언론인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