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 핵무기 시험 재개령에 ‘냉전망령 부활’ 우려

2025-10-30 (목) 07:5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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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격 결단에 전세계 긴장…러 “그에 따라 대응할 것”

▶ “미·중·러 통제 불가능한 핵군비경쟁 시작될 가능성”

트럼프 핵무기 시험 재개령에 ‘냉전망령 부활’ 우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0일(한국시간) 부산 김해공군기지 의전실 나래마루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마친 뒤 회담장을 나서며 대화하고 있다. 2025.10.30 [연합]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핵무기 시험 재개 지시에 핵군비 경쟁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이번 트럼프의 발언은 최근 러시아·이란 등 핵보유국의 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나와 긴장을 키우는 모습이다.

◇ 트럼프 '맥락 없는' 핵시험 재개 지시에 전 세계 긴장


31일 AFP 통신과 BBC·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핵무기 시험 재개 지시는 전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부산 정상회담 직전 소셜미디어를 통해 갑작스럽게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다른 국가들의 시험 프로그램으로 인해 나는 동등한 기준으로 우리의 핵무기 시험을 개시하도록 국방부(전쟁부)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엄청난 파괴력 때문에 그렇게 하기 싫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러시아가 2등이고 중국이 뒤처진 3등인데 중국은 5년 안에 비슷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핵무기 시험이 핵탄두 자체 실험을 말하는 것인지 핵을 탑재하거나 핵을 동력으로 한 무기 시험인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그의 발언이 1992년 이후 미국이 자제해온 핵실험 재개일 수 있다는 관측이 이어지면서 러시아와 중국의 핵 대응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그가 러시아·중국의 핵탄두 규모를 비교하며 핵무기 시험 재개를 지시한 점은 이런 우려에 힘을 싣는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러시아는 미국보다 더 많은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의 핵탄두는 2030년 1천기를 넘어선 뒤 2035년이면 러시아와 비슷한 수준이 된다는 것이 미국 국방부의 전망이다.


트럼프 발언 직후 러시아와 중국은 즉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전날 브리핑에서 "누군가 (핵시험) 유예를 어기면 러시아는 그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도 미국이 포괄적핵실험금지 조약에 따른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과거 냉전 시대의 핵 군비 경쟁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면서 다른 국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은 "미국의 핵실험 재개를 무책임하고 퇴보적"이라고 비난했고 요한 바데풀 독일 외무장관은 "5개 핵보유국은 핵실험 금지 조치를 지켜야 한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 "수년대 미·중·러 핵 군비 경쟁 시작될 수도"

미국의 핵실험 재개 논의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트럼프 1기 정부는 당시 핵실험 준비 기간을 1년에서 6개월로 단축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2023년 마련된 트럼프 재집권 청사진 '프로젝트 2025'에도 적국에 적시 대응을 위해 핵실험을 즉각 준비할 수 있는 태세로 전환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이번 미국의 움직임은 최근 핵보유국이 관여한 분쟁이 곳곳에서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다르게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과정에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하며 연일 핵무기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인도는 올해 5월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있었던 총기 테러에 보복하겠다며 파키스탄 내 9곳에 미사일 공격을 벌였다.

이스라엘은 지난 6월 이란의 핵시설과 미사일 발사대 등을 대거 폭격하고 군 지휘부와 핵 과학자 등을 표적 살해해 중동 지역에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러시아와 미국의 마지막 핵무기 통제 조약인 신(新)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가 내년 2월 만료를 앞둔 점도 우려를 키운다.

워싱턴 군비통제협회(Arms Control Association) 대릴 킴벌 사무총장은 미국의 핵무기 시험 재개는 "국제안보사에서 역사적인 실수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러시아가 새로운 조약을 체결하지 않으면 수년 내에 미국·러시아·중국 간 통제불가능하고 위험한 3차 핵 군비 경쟁이 시작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러시아·중국 등을 향한 일종의 정치적 수사라는 해석도 있다.

미국 보수 진영의 싱크탱크 해리티지 재단 로버트 피터스 연구원은 "핵탄두를 시험할 기술적인 이유가 없다고 해도 상대국에 정치적인 메시지를 주기 위한 것이 첫 번째 이유가 될 수 있다"며 "트럼프를 포함해 누구든지 신뢰를 보여주기 위해 핵무기 시험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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