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금요단상] 흥부 듀오

2025-10-31 (금) 12:00:00 이희숙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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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남편이 유튜브를 보며 즐거워한다. 우리 집에 생기가 도는 듯하다. 손흥민 선수가 로스앤젤레스팀으로 옮겨 활약하면서부터다. 골이 들어갈 때 느끼는 짜릿한 통쾌감을 무엇에 비기랴. 한인 교포들에게 단순한 스포츠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추석엔 가족이 모여 저녁 식사 후 손흥민 선수가 소속된 LAFC의 경기를 시청했다. 한국의 대표적 명절인 추석을 조용히 보내긴 아쉬워 밥이라도 먹자며 가족을 불러 모았다. 몇 가지 음식을 만들고 누렇게 익은 감을 따서 접시에 소복이 담으며 나누는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다. 딸과 손주는 자연스러운 소통을 통해 우리네 마음에도 불그스레 행복이 여물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 함께 응원하며 세대 간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기에 더욱 좋은 시간이 되었다.

올해 여름, 손흥민은 그동안 활약했던 토트넘 홋스퍼를 떠나 LAFC로 이적했다. 그의 LAFC 입단은 재미 교포에게 큰 관심을 받았고 한인 커뮤니티는 감동하며 큰 자긍심을 갖는다고 할까. 그는 이미 세계적인 축구 스타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지만, 특히 그가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LA에서 뛴다는 의미는 더욱 각별하기 때문이다. 그를 보기 위해 구름떼같은 관중이 몰리고 열광적인 응원을 받고 있다.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한인타운에서는 응원 열기로 가득하고, 다양한 문화 행사와 팬 미팅 등을 통해 세대나 계층 간 벽도 허문다. 자연스레 한인 커뮤니티가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렇기에 손흥민을 응원하면서 우리 민족도 세계적인 무대에서 이렇게 활약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손주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다. 한국인의 노력과 끈기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은가. 즉 차세대에게 손흥민 선수는 훌륭한 롤모델이 될 수 있다. 세계 무대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과 자긍심을 심어주는 인물이기에 그의 존재는 스포츠를 넘어 삶의 방향성과 꿈을 제시하는 길잡이가 될 터이다. 그의 한 발 한 발이, 경기장 위의 드리블이, 수많은 교포의 가슴을 울리는 것이다.

그의 태도와 리더십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부어 넣고, 그의 활약이 동료 선수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 더욱이 주목할 점은 바로 ‘흥부 듀엣’이다. 듀엣은 함께 노래하거나 연주할 때 쓰는 단어다. 주인공을 빛내주기 위한 조연이 아니라 서로 함께 곡을 이끌어 간다. 탁월한 통솔력과 인성을 가진 손흥민이 부앙가 선수와 듀엣 경기를 실현하고 있다. 핵심 공격수 콤비로 활약하며, 두 선수 모두 득점력과 도움 능력이 뛰어나 팀의 공격을 이끌고 있다. 서로 배려하는 마음은 이기기 위해 뛰는 경기에서 보기 힘든 일이지 않은가.

이에 ‘흥부 듀엣’은 콤비네이션 플레이를 일컫는 신 용어인 게다. 손흥민의 ‘흥’과 부앙가의 ‘부’를 따와서 흥부 듀오로 부른다. 어원은 흥부전에 등장하는 흥부에서 비롯했을 터. 서로의 몫을 챙겨주려 논에 볏단을 몰래 옮겨 놓은 전래동화 ‘의좋은 형제’의 끈끈한 형제애를 확인하는 듯하다. 보름달 아래 서로의 정체를 알아채고 웃는 형제의 모습이 크게 클로즈업된다.

‘흥부 듀오!’ 앞으로 또 다른 듀엣의 활약을 기대한다. 재미교포와 손흥민 역시 ‘흥부 듀엣’의 조합이기 때문이다.

<이희숙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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