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백상논단] 미·중관계와 한국경제의 고차방정식

2025-10-30 (목) 12:00:00 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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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개최된다. 1991년 서울, 2005년 부산에 이어 세 번째다. 이에 따라 한국은 미국·태국과 함께 APEC 3회 개최국의 일원이 된다. 1989년 호주 캔버라에서 시작된 APEC 회의는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과 함께 세계화를 촉진하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지속 성장과 번영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됐다. 자유무역과 투자, 지역경제 통합, 경제·기술 협력, 인적 안전 보장, 친(親)비즈니스 환경 조성 등이 강조됐다.

출범 당시 12개국이 현재는 21개국으로 확대됐지만 결의에 대한 구속력이 약한 만큼 가시적인 성과는 다소 미약한 것으로 평가됐다. 다만 양자·다자 대화의 장으로서는 나름의 역할을 했다. 세계는 미중 정상회담에 촉각을 세운다. 미중 갈등은 인공지능(AI) 등장에 따른 직업군의 급격한 재편과 함께 경제의 최대 위험 요소이기 때문이다. 사실 APEC 회의가 본연의 목적이 아닌 양자 대화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한 것은 1991년 서울 회의였다. 중국을 신규 멤버로 초청하는 과정에서 이면 회담을 통해 한중 수교가 집중 논의됐고 결국 성사됐다.

중국은 어쨌거나 실체가 있는 경제 대국이다. 한때는 유럽이 미국과 맞먹는 경제 실체로 여겨졌다. 지금은 급속하게 그 위세가 떨어지고 있다. 경제 규모가 미국의 70%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핵심 국가인 독일·프랑스·영국은 정치적인 격동을 겪고 있다. 반면 중국은 미국의 70% 정도 경제 규모지만 브릭스(BRICS)와 아세안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감안해 볼 때 확실히 실체가 있다. 결국 미국과 중국이 세계 질서의 운항을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당사자인 것은 분명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은 중국을 고관세 부과로 압박하고 있고, 중국은 보복 관세 및 희토류 금수를 축으로 맞받아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무한정 때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상호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다. 세계 경제가 유기적으로 연결, 단기간 내에 미국 의도대로 이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주가의 흐름상 나 홀로 호경기가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실물경제는 얘기가 다르다. 올 들어 7월까지 통계로만 봐도 무역수지 적자가 무려 8093억 달러로 지난해 전체 적자의 67%나 될 정도로 악화됐다.

이에 비해 중국 경제는 선방하고 있다. 3분기 성장률이 4.8%로 직전 분기 대비 0.4%포인트 떨어졌지만 누적 기준으로는 5.2%로 아주 나쁘지는 않다. 대미 수출이 15% 이상 급감했는데 이는 미국의 고관세 정책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무역 다변화를 통해서 올 8월까지 5.8%의 수출 성장을 이뤘다. 또 미국의 대대적인 압박은 중국의 자체 기술 개발 의지를 자극하고 있어 자체 기술 축적을 촉진할 여지가 충분하다. 드론과 전기자동차·AI 등에서 이미 그 싹을 보이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쌓은 600만여 명에 달하는 해외 유학 인력은 전 세계의 첨단기술을 숙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 장벽의 판도라 상자는 열려버린 것 아닐까. 트럼프의 막무가내 식 대중 제재가 독이 될 수도 있다. 전제 정권으로 인식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4연임에 명분을 줄 수도 있다. 현재 미중 관계의 대체적인 방향은 2023년 11월 1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재확인된 상호 존중, 평화 공존, 소통 유지, 충돌 방지, 유엔헌장 준수, 공동 이익 분야에서의 협력, 양자 간 경쟁 요소의 효율적 관리 등이다.

시 주석은 장기 집권하면서 지난 12년간 버락 오바마, 트럼프, 조 바이든 대통령에 이어서 또다시 트럼프와 대면하게 된다. 그는 미국의 속내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다. 회담에 임한다는 자체는 상당한 정도의 합의점에 도달했다고도 볼 수 있다. 지금은 전 세계적 정치·경제 격변의 시기다. 이재명 정부도 답안지가 없는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경주 APEC 회의에서 미중 관계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으면 한다. 1972년의 닉슨-저우언라이 회담과 같은 심도 있는 논의가 된다면 금상첨화다.

<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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