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개월 평행선…상호관세 25→15% 인하 분수령
▶ 불확실성 증폭에 환율 뛰며 487조→504조원으로 늘어
▶ 타결돼도 품목별 관세·환율 불안 등 변수…2차 충격 우려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한미 양국이 3천500억달러(약 504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 구성을 두고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전액 현금 선불 투자'를 주장한 트럼프 대통령과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신용 보증과 장기간 '할부'가 불가피하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 사이에서 절충점이 도출될 것이라는 기대가 일단은 우세한 상황이다.
다만 3개월간 평행선을 이어온 양측이 큰 틀에서 의견을 모으더라도 이후에 세부 항목을 두고 다시 불확실성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또, 이번 협상은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기 위한 필요 조건일 뿐이며 향후 미국이 반도체 등 다른 핵심 산업에 품목별 관세를 부과하려고 할 경우 더 큰 고비가 닥칠 것이라는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 트럼프 '선불 투자' vs 한국 "장기 분납 아니면 불가"
26일(한국시간) 관가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방한이 한국 경제는 1차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한미 양국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29∼30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을 찾는 데 맞춰서 3천500억달러 대미 투자 펀드와 관련해서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는 기대를 비춘 상태다.
대미 투자 펀드는 상호관세율을 낮추기 위한 핵심 조건이다.
한미는 지난 7월 31일 미국이 한국의 상품 전반에 적용키로 한 상호관세율 25%를 15%로 낮추기로 합의했다. 특히 25%의 품목별 관세가 부과됐던 대미 수출 1위 품목인 자동차도 15%로 하향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 펀드의 규모와 구성 등을 두고 양국간 입장차가 큰 탓에 아직 관련 협상 타결 가능성이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액 직접 투자, 즉 선불을 요구했지만, 우리 정부는 직접 투자와 대출·보증 등을 섞어야 한다고 설득 중이다.
관세 협상이 각론에서 부딪히자 불확실성이 급격히 커지며 외환시장이 흔들렸다.
7월 31일 타결 소식이 전해졌던 당시 원/달러 환율은 1,390원대였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그것은 선불(up front)"이라고 으름장을 놓은 9월 무렵에는 1,410원대로 올랐다.
이후 한 달이 지나도록 뚜렷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환율은 장중 1,440원대로 올라서는 등 눈에 띄는 상승 곡선을 그렸다.
이 기간 3천500억달러 펀드는 한화로 487조원 수준에서 504조원으로 불어나 버렸다.
◇ 불확실성에 韓 '울며 겨자 먹기' 타결 유력…트럼프도 정치적 실리 찾아야·
전문가들은 일단 이번 트럼프 대통령 방한 중 한국이 불확실성 확대를 피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합의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정치적 명분이 필요하기 때문에 절충점을 찾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미시간) 아시아 순방길에 대통령 전용기(에어포스원) 안에서 가진 기자들과 문답에서 협상에 관해 "타결(being finalized)에 매우 가깝다"고 말했다.
일단 지금까지 대면 협의에서 대강 방향은 정해진 분위기다.
한국 경제 규모상 3천500억달러 일시 투자는 불가능하다는 점은 미국에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한국이 1년에 쓸 수 있는 금액은 최대 150억∼200억달러 수준이라고 밝혔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20일 미국이 여전히 전액 현금 투자를 요구하느냐는 질의에 "거기까지는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3천500억달러 중 현금성 투자 규모와 납입 기간을 얼마나 길게 잡을지가 주요 쟁점이고 세부적으로는 수익 분배 구조와 투자처 선정 시 개입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매년 250억 달러씩 8년간 총 2천억 달러 현금 투자를 하고 나머지 1천500억 달러는 신용 보증 등으로 돌리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이제 남은 선택은 결렬이냐 타결이냐다"라며 "양국 정상이 얼굴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협상을 결정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예상했다.
그는 "협상이 결렬된다면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성과가 없고 정치적 명분이 없으며, 우리 역시 결렬되면 또 다른 불확실성이 생기기 때문"이라며 "현금과 대출 보증 방식이 섞인 장기간 투자 방식, 그리고 투자 대상 의사 결정에 우리가 참여하는 방식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결과"라고 말했다.
최병호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1년에 150억달러만 투자한다고 하더라도 한국 돈으로 20조원이 넘어가는데, 회수가 가능할지도 알 수 없다"며 "수익성이 불확실한 엉뚱한 곳에 돈을 써야 하니 국내 투자 재원이 줄어들고, 고용에도 악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이어 "그렇다고 타결이 미뤄지고 협상이 길어진다면 그 자체가 우리 경제에 안 좋은 시그널로 작용할 것"이라며 "어느 시점이 지나면 오히려 25%인 상호관세를 더 올리겠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타결돼도 끝 아냐…품목별 관세 뇌관 살아 있어
문제는 상호관세가 어떤 방식으로든 타결된다고 하더라도 품목별 관세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국가 안보상 수입을 제한할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철강과 알루미늄 등에 최대 50%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지난 7월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액은 2억8천만달러로 1년 전보다 26% 감소하는 등 이미 품목별 관세 피해를 보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철강이나 알루미늄을 사용해 만든 파생 제품 중 관세 부과 대상으로 추가할 품목 확대를 검토 중이다.
미국이 한국의 주력 상품인 반도체에 품목별 관세를 높은 수준으로 부과한다면 대미 수출에 심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반도체와 의약품에 대해선 "한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더 나쁘게 대우받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긴 했다.
하지만 그동안 1기 때 약속을 번복한 트럼프 행정부의 전례를 보자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상무부는 반도체와 반도체 제조장비, 파생제품 수입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8월 중에 발표할 것이라는 예고는 아직 지켜지지 않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에 관세율 100%를 부과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자국 인공지능(AI) 산업 투자가 계속되는 한 실제로 100%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도 있지만,
최병호 교수는 "최종적으로 문서화가 되기 전에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며 "지난 한미정상회의 결과서도 봤듯이 문서화 이전엔 항상 불확실성이 있다. 품목 관세도 마찬가지"라고 우려했다.
또, 3천500억달러 투자 펀드와 관련한 세부 사항을 두고 다시 삐걱댈 우려도 있다. 일부라 해도 상당한 규모 현금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으로 인해 환율이 상승하며 외환시장이 불안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