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지 F. 윌 칼럼] 가자 휴전의 일등공신은 IDF와 네타냐후

2025-10-20 (월) 12:00:00 조지 F· 윌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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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빙빙 돌리지 말고 직설적으로 말해야 한다. 2023년 10월 7일 이후 이스라엘의 강공 드라이브는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한 진실, 즉 군사력이 종종 외교의 공간을 만들고, 때로는 오직 군사력만이 외교관들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확연히 보여주었다.

이스라엘과 여전히 살육을 원하는 자들 사이의 휴전을 이루어낸 주된 공로는 이스라엘 방위군(IDF)에게 돌아가야 한다. 또한 세계 여론에 과도하게 휘둘리지 않고 단호하게 IDF의 무력을 사용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공로도 인정해야 한다.

이번 휴전이 단순한 일시적 정전을 넘어 진정한 평화로 이어질 수 있다면 그것은 2023년 10월 7일의 하마스 테러공격을 통해 이스라엘이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전쟁 수행 능력을 파괴하는 것이 전쟁 종식의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이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외교의 시간은 그 이후에 찾아왔다. IDF의 선봉에 서서 일방적이고 무차별적인 폭력에 맞서 싸운 젊은 이스라엘 남녀들 덕분에 외교관들의 시간이 가능해졌다.


미국 독립선언서는 “인류의 의견에 대한 품위 있는 존중”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의견들이 존중받을만 하지 않거나, 그 의견을 따르는 것이 부당한 결과를 낳을 때 그것은 품위 없는 존중이 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억제하지 않음으로써 이스라엘의 승리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 반면, 미국의 정책은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지나칠 정도로 우크라이나의 반격을 제약했다.

이스라엘이 과도한 무력을 사용했는지, 언제 그랬는지는 결국 역사가들이 평가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존중받을 만한 역사적 판단은 2023년 10월 7일의 현실을 직시하는 이들에게서 나올 것이다. 이스라엘과 맞닿은 가자 지구는 민간인들 뒤에 숨어 가해를 일삼는 무장정파가 장악하고 있었다. 역사가들은 그날의 시작부터 기억해야 한다. 하마스의 바디캠 영상에 기록된 그들의 성폭력과 잔혹 행위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역사가들은 이스라엘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네타냐후가 어려운 상황에서 과감한 행동을 취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는 나폴레옹의 격언에 따라 행동했다. 격언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공통된 한 가지 의미는 “거사를 치를 때에는 우물쭈물망설이지 말라”것이다.

모든 전쟁에는 끝이 있다. 백년 전쟁, 삼십년 전쟁, 칠년 전쟁, 그리고 그 이전과 이후의 모든 전쟁도 결국 끝났다. 어떤 전쟁은 쌍방 혹은 어느 일방의 비대칭적 소진으로 말미암아 끝났고, 어떤 전쟁은 이견을 절충하는 협상을 통해 막을 내렸다. 지난주 일단 멈춰섰고 어쩌면 완전히 끝났을지도 모를 이번 전쟁은 이스라엘이 ‘진정한 의미의 평화로운 하루’를 단 한번도 누려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평화는 단지 폭력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폭력의 위협이 끊임없는 삶의 배경소음이 아닌 상태를 뜻한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헤즈볼라 등 국가가 아닌 무장집단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하마스와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국가의 파괴를 목표로 하며 이들의 위협은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부터 존재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했을 때, 그 염원은 실현과는 아직 거리가 멀었다. 이는 1776년 7월 4일, 북미 13개 식민지가 세계 최강의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을 당시와 마찬가지였다. 이스라엘은 제2차 세계대전의 상흔 속에서 탄생했으며 독립은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없애기 위해 아랍 국가들이 수년간 벌여온 전쟁의 한가운데서 이루어졌다


이스라엘은 항상 미국의 지지를 받아왔고, 그럴만한 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결코 지지에 의존하지 않았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주인공 블랑쉬 듀보아는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늘 낯선 이들의 친절에 의존해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우슈비츠로 절정에 이른 수세기의 고통은 유대인들에게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었다. 이스라엘의 탄생은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홀로코스트 이후의 선언이었다.

10월7일 이후, 네타냐후는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이스라엘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이라고 외쳐야 할 상황을 맞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폭력 사용은 오히려 폭력을 절약했을지도 모른다. 두 적대 조직의 파괴는 향후 수년간 양측 모두에서 발생했을지도 모를 더 많은 죽음을 막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미국 관리들은 소련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가 그랬듯, 이스라엘에게도 존재 자체가 늘 위험이었다. 이스라엘은 폭력과는 거리가 먼 안전한 곳에서 편안히 살며 비판을 쏟아내는 이들의 여론에 맞춰 자신의 항로를 조정하길 거부해왔다.

우크라이나의 굳건함이 그러하듯, 이스라엘의 결연함 또한 결단력을 간헐적으로만 보여주는 서방 세계에 주는 하나의 선물이다. 미국은 호전적인 적들과의 협상에서 “평화를 위한 위험을 감수하라”며 이스라엘을 압박해왔다. 이에 대해 네타냐후는 한 관리에게 워싱턴의 조용한 교외 지역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체비 체이스에 살잖아요. 우리 미래를 가지고 장난치지 마세요.”

소련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가 그랬듯, 이스라엘에게도 존재 자체가 늘 위험이었다. 이스라엘은 폭력과는 거리가 먼 안전한 곳에서 편안히 살며 비판을 쏟아내는 이들의 여론에 맞춰 자신의 항로를 조정하길 거부해왔다. 우크라이나의 굳건함이 그러하듯, 이스라엘의 결연함 또한 결단력을 간헐적으로만 보여주는 서방 세계에 주는 하나의 선물이다.

<조지 F· 윌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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