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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캄보디아, 한국인 킬링필드

2025-10-16 (목) 12:00:00 박일근 /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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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는 한때 인도차이나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크메르 제국(Khmer Empire·802~1432)의 후손이다. 지금의 태국과 라오스 전역은 물론 베트남 남부도 제국의 땅이었다. 전성기 영광을 엿볼 수 있는 게 바로 앙코르와트다. 비시누 신이 다스리는 힌두교의 이상향을 구현한 12세기 건축물로, 세계문화유산이다. 1953년 프랑스 식민지에서 독립한 후에도 수도 프놈펜은 한동안 ‘동남아의 파리’로 불렸다.

■ 그러나 1974년 ‘붉은 크메르’란 뜻의 극좌 공산주의 무장 단체 크메르루주(Khmers rouges)가 집권하며 대학살이 벌어지는 킬링필드(The Killing Fields)로 전락한다. 중국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을 동경한 1인자 폴 포트는 안경을 쓰고 자본주의에 물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지식인과 도시민을 숙청했다. 4년간 국민의 4분의 1인 200만 명이 숨졌다. 악몽은 폴 포트가 베트남인들까지 학살하자 1979년 베트남군이 프놈펜을 점령하며 끝나는 듯했다. 그런데 이후 캄보디아 내전에서 미국과 중국이 지원한 쪽은 크메르루주였다. 미국은 베트남을 견제하는 게 급했고, 중국은 영향력을 유지하고 싶었다. 냉혹한 국제사회의 민낯이다.

■ 이런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대학생이 납치된 뒤 고문을 받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캄보디아는 이미 국제 온라인 사기 범죄 집단의 온상으로, 인신매매와 구타, 전기 고문 등이 다반사라는 게 유엔의 보고다. 중국인을 총책으로 한 범죄가 횡행하는 데도 캄보디아 정부가 묵인하고 있는 건 돈 때문이다. 캄보디아 국내총생산에서 이런 사기 산업의 비중은 40%에 달한다. 중국은 대운하까지 건설해주고 있다. 외세에 의지하다 치안 주권까지 포기한 셈이다.

■ 한때의 제국이 민폐국이 되는 과정은 결국 국민과 주권을 지키려면 스스로의 힘을 키울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준다. 그 힘의 근간은 경제에서 나온다. 거짓말이라고 의심할 만한데도 캄보디아행 비행기를 타는 이들이 많은 건 그만큼 궁지에 몰렸다는 얘기다. 민생을 살리고 국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게 이역만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국인의 비극을 막는 근본책이다.

<박일근 /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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