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영포티’ 비하 유감
2025-10-10 (금) 12:00:00
최문선 / 한국일보 논설위원
애플 아이폰이 ‘영포티(젊은 척하는 40대)’의 상징이 됐다고 한다. 40대의 아이폰 사용률이 지난해보다 12%포인트 늘어났다고(한국갤럽 ‘스마트폰 관련 조사 2012~2025’). “조사 배후가 삼성전자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왜일까. “‘영포티’가 좋아하면 2030 세대가 기피한다”는 게 요즘 마케팅 공식. ‘호카’ ‘온러닝’ 등 러닝화 관련 주가 상승이 멈춘 건 영포티가 신어서라는 증권사 애널리스트 분석도 있다.
■ ‘영포티’라는 말이 나온 건 약 10년 전. ‘대한민국 정책 브리핑’은 2017년 ‘오늘의 경제 신조어’로 ‘영포티’를 소개했다. “패션·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 안정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패션·뷰티 업종 소비 주체로 부상, 기성세대 가치관 답습을 거부…” ‘신인류형 중년’이란 뜻이었지만, 최근엔 멸칭이 됐다. ‘취향·감각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 난 철없는 중년’쯤 되겠다. ‘서윗(‘스위트’의 사투리 발음) 영포티’로도 확장했다. “나 정도면 괜찮잖아~” 하면서 어린 여성들에게 치근덕거리는 아저씨들.
■ 젊은 게 부럽지 않은 그냥 ‘포티’인데, 아이폰은 20년째 쓰고 있는데, 왜 ‘영포티’라고 한데 묶여 손가락질받는 것일까. 이번엔 40대 차례일 뿐, 세대별로 편을 갈라 서로 비하하는 ‘세대주의 낙인’은 역사가 길다. “제가요? 지금요? 왜요?”가 MZ세대에게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라는 혐의를 씌우는 밈이라면, “라떼는…”은 청년세대가 보기에 무례하고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꼰대세대 특징을 압축한 말이다.
■ 베스트셀러 책 중에 ‘그런 세대는 없다’가 있지만, 현실에 ‘그런 세대’는 있다. 비슷한 시기에 나고 자라며 시대적 사건을 함께 겪는 동안 공유하는 뭔가가 생겨나기 마련이기 때문. 세대 간 차이는 인정하면 그만이다. 서로 욕해 봐야 입만 아프다. 불평등, 양극화 같은 문제를 만드는 건 세대보다는 계급과 계층이다. 세대론에 매몰되면 스스로 눈을 가리는 것이다. ‘왜 누군가는 극빈한 노인이 되고, 누군가는 건물이 10채인 어린이로 태어났는지’를 세대론은 설명할 수 없다. 그러니, ‘영포티’ 너무 미워하지 말아 달라고 ‘포티’가 쓴다.
<최문선 / 한국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