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투명한 사람의 빛

2025-10-01 (수) 04:31:27 성소영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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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칼럼에서 우리는 ‘투명한 사람’이 종종 미움을 받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이글을 읽고 “나는 남 눈치 안 보고 내 생각을 솔직히 말하니까, 내가 바로 투명한 사람이지!”라고 단정 지으며 “그러니까 내 성격은 고칠 필요가 없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가 하면, 반대로 “모두가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라는 의문을 품는 분들도 계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진정한 투명함’이란 무엇인지,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려 합니다.

진정한 투명함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긴 자아 성찰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 시간을 통해 나 자신을 진실하게 마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타인에 대한 배려가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진짜 나를 알게 되면 상대가 보이고, 상대가 보이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배려가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서 흘러 나오게 됩니다.


투명함은 본래 건강한 인격의 일부입니다. 그런데도 종종 투명한 사람들이 오해를 받는 이유는,투명함이 ‘배려 없음’이나 ‘무례함’과 혼동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실, 진정한 투명함은 배려와 함께 갑니다.

또한 진정한 배려는 단순한 친절이나 침묵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대의 감정을 읽고,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며, 그에 맞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투명함은 그냥 자신이 느끼는 대로 말하는 단순한 솔직함이 아니라, 자기 성찰과 정확한 판단, 그리고 그 결과를 적절한 언어로 표현하는 기술이 동반된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나는 이렇게 생각해’라고 말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이렇게 말했을 때 저 사람이 어떻게 느낄까’를 함께 고려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왜 우리는 투명해지기 어려울까요?

대부분의 사람은 성장 과정에서 투명함보다 먼저 ‘생존’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누구나 가지고 있었던 투명함으로 진짜 감정을 드러냈다가 상처를 입은 경험이 누적되면서, 우리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면을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때로는 우울함을 감추려 과도하고 명랑하게 행동하고, 수치심을 숨기기 위해 잘난 체하며, 열등감을 덮기 위해 타인을 깎아내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서서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투명함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면을 자신이 쓰고 난 후부터는 이 세상 사람들도 모두 이 가면을 쓰고 살아 갈 것이라 추측하게 되죠. 진실을 보이면 자신이 또 상처 받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말입니다. 결국 투명함 자체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죠.

반대로, 투명한 사람은 자신을 꾸미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으며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무례하거나 자기중심적인 사람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투명한 사람일수록 타인의 마음을 해치지 않기 위해 오랫동안 고민하고, 때로는 조용히 배려하는 법도 배워 갑니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행동의 선택이 ‘진짜 자신’에게서 비롯된다는 점입니다.

결국, 진정한 투명함은 자기 기만을 거부하는 용기와 타인을 향한 따뜻한 배려가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단순히 솔직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그것을 얼마나 건강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를 묻는 성찰의 과정인 것입니다.

투명함을 유지한다는 것은 결국,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자, 자신을 속이지 않겠다는 용기 있는 다짐입니다.자신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판단 없이 받아들이며, 동시에 타인을 해치지 않고 진심으로 위할 수 있는 마음까지 품게 될 때, 그제서야 우리는 ‘성숙한 투명함’이라는 인격의 일부를 지닌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만들어 진 투명한 사람이 비추는 그 빛은 결국 세상을 조금씩 정화시키고, 누군가에게는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ssung0191@yahoo.com

<성소영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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